김석연 공주대 겸임교수
[수요광장]

기러기는 겨울로 가는 길목에 소식을 전해주는 철새로 잘 알려져 있다. 소식만 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며 나는 동작에서 창조적인 착상을 얻을 수 있는 알음알이가 있다. 깊이 새겨보면 행동 하나하나에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 즉 인의(人義)에 대해 깨닫게 한다. 그 이치를 알아 행한다면 그 지혜가 사랑이고 상대를 위해 세상을 잘 살아가는 길일 것이다.

사람도 절(節)을 지키며 백년해로하기 어렵다는데 기러기는 사랑이 지극해 한 번 짝이 되면 생을 다할 때까지 헤어지지 않는다니 얼마나 상상을 초월한 일인가? 그래서 금슬 좋은 부부를 기러기에 비유했고, 전통 혼례식에 반드시 기러기 한 쌍을 올리는 것은 겉 치레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의 정표이리라.

그 뿐인가. 사람은 스스로 정해 놓은 규칙이나 공공질서를 지키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기러기는 그 먼 여정을 날갯짓 하나에 의지해 질서를 지키며 무리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목적지를 오간다. 얼마나 뛰어난 인지능력인가? 이러한 현명한 섭리를 제대로 배워 상생할 수 있는 인간관계로 현명한 삶을 살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더불어 정의롭지 못한 이기심으로 서로 원망하는 모습들을 접할 때면 기러기처럼 서로 감쌀 수는 없는 것일까? 동료가 어려울 때 서로 보호하고, 뒤처지는 동료가 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보살피며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닮을 수는 없을까? 역설적인 생각을 해 본다.

솔선수범하고 귀감이 되는 행동은 또 있다. 리더가 앞서가다 지치면 반드시 그 다음과 자리바꿈을 하여 앞서가는 리더를 쉬게 하는 배려와 신뢰다. 그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부족한 시대에 기러기에 긍정적인 좋은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에 번져 행복한 사회, 희망찬 사회로 가는 꿈을 꾸는 것이 넉넉지 못한 생각일까?

왜 우리 사회는 일부 정치하는 분들에게 철새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철새들의 총명함을 본받았다면 서로 불신하는 풍토보다는 믿고, 협력하고, 배려하여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지도자로 인식되었을 텐데,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가위가 다가온다. 출향민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정이 있고, 그리움이 서린 곳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 많은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고향을 그리나보다. 명절에 고행을 감수하고라도 태어나 자란 곳, 변할 수 없는 정신적 뿌리가 있는 곳, 조상의 위폐가 모셔 있는 곳을 향해 갈 것이다. 많이 퇴색돼 버린 고향이지만 찾았을 때 심장 속에 숨어 있던 향수는 눈언저리를 촉촉하게 적시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자아를 발견해 인간성회복을 위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고향 땅으로 귀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나긴 인내를 요구하는 땅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진리가 있다. 정성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흙과 함께하며 미래를 가꾸겠다고, 농촌에 뿌리내려 꿈과 희망을 심겠다고 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올해는 열흘이라는 최대의 연휴이니 다른 해에 비해 귀성전쟁이 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향 가는 길은 항상 기쁘고 뿌듯하면서 피로가 쌓이게 마련이다. 그럴 때 먹을거리와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아 머나먼 길을 날기 위해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기러기에게 한 수 배워, 무턱대고 끼어드는 비신사적인 행동, 지그재그 위협하는 무법자적인 행동, 아무 때고 추월하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자제해 성숙된 문화를 꽃 피웠으면 한다. 보름달과 함께 희망의 바이러스가 잔잔하게 퍼져 풍요로운 한가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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