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도시는 기억이다'

▲ 게르마니아 모형도. [서해문집 제공]
▲ 게르마니아 모형도. [서해문집 제공]
히틀러가 꿈꾼 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는 어떤 도시일까

신간 '도시는 기억이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33년 1월 독일 수상에 취임한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독일 도시에 기념비적 건물이 없고 영리 목적의 백화점과 호텔만 가득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베를린을 세계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로 변모시키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히틀러의 건축가로 알려진 알베르트 슈페어(1905∼1981)는 중심축이 되는 십자형 도로를 조성하고, 그 주변에 주요 공공건축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우선 120m 폭의 중심도로를 7㎞에 걸쳐 놓고자 했다. 또 약 10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거대한 광장을 중심으로 500m 길이의 회랑이 있는 지도자궁, 군사령부, 제국의회, 18만 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돔을 건립하려고 했다.

권형진 건국대 교수는 신간 '도시는 기억이다'(서해문집 펴냄)에서 나치의 도시 건축을 분석한 글을 통해 "대도시 중심부에 거대 도로와 공공건물만을 설치하겠다는 게르마니아는 히틀러의 과대망상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게르마니아 계획의 특징으로 무엇보다 규모의 거대함을 꼽았다. 독일 민족의 우월함을 나타내기 위해 '최고',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물 건설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국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려고 했던 것도 게르마니아의 특이점이었다. 권 교수는 "국가기관의 거대한 건물이 민간 경제 단체와 주민을 통제하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르마니아의 결정적 문제는 정복전쟁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는 점이다. 히틀러는 식민지를 늘려 확보한 재정과 노동력을 도시 건설에 투입할 심산으로 게르마니아를 꿈꿨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나치의 정복전쟁은 게르마니아 건설 계획의 실패 원인인 동시에 게르마니아 건설을 계획하도록 한 원인이었다"고 꼬집었다.

비록 히틀러의 게르마니아는 무위로 끝났지만, 거대한 건축물을 올려 국가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발상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도시사학회가 기획한 '도시는 기억이다'에는 히틀러의 도시 건축 외에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양에서 세워진 공공기념물에 대한 다양한 글이 담겼다.

로마 포룸의 문화경관 변화 양상, 산마르코 광장과 날개 달린 사자상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징이 된 이유,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과 넬슨 기념비 조성 과정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논문을 읽어볼 수 있다.

민유기 경희대 교수는 서문에서 "공공기념물은 도시가 기억하는, 기억하고 싶어 하는, 기억해야 하는 과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며 "공공기념물 분석은 특정 도시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정체성을 내세우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접근방식"이라고 적었다. 544쪽. 2만3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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