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나 청주시 서원구 여성가족팀
[시선]
간만의 정시 퇴근길, 아파트 진입도로변 좌판에 곱게 자리 잡고 있는 선홍빛 복숭아를 보니 얼굴 가득 함박꽃을 피울 일곱 살 딸아이가 그려졌다. 복숭아를 한 봉지 가득 담아 들고 아파트 7층 우리집 현관문을 여는데, 급히 벗어놓은 듯한 낯선 신발 한 켤레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냉큼 방 안에서 달음질쳐 나오는 딸 옆에 낯선 신발의 주인공, 딸의 유치원 친구가 멋쩍게 따라 나왔다. 슬쩍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7시 반을 지나가고 있다. 서둘러 아랫집으로 출발할 차례다. 딸아이 손에 복숭아 봉지를 들리고 층계를 내려갔다. '딩동, 아랫집 현관문이 열리고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주인부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어 달 전, 지금 이 아파트로 이사 와서 인사떡을 돌리느라 방문한 이후 처음이다. 딸아이 친구가 놀러 와 있어서 조심시킨다고 해도 두 아이들이 발걸음을 쿵쿵거릴 수 있으니 양해 좀 부탁드린다며 말을 건넸다. 슬며시 복숭아가 소복 담겨 있는 봉지도 함께 건네면서 한껏 죄송한 표정을 지어보이니 남편분이 "아이 있는 집은 다 그렇지요. 저희도 아이들만 셋이라 다 그러고 살았어요"라며 허허거리신다. 우리는 그렇게 발 밑 마루, 아랫집 부부에겐 머리 위 천장이 될 그 벽을 사이에 두고 이웃 간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고 있다.
최근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등 층간소음에 대한 적극적이고 제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화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소음 유발자를 퇴거 조치하거나 일정 시간대의 소음 발생을 법적으로 금지 시키는 등 엄격하게 규제해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는데 반해 아직 우리나라는 층간소음을 규제할 제도가 턱없이 미흡한 실정이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층간소음 갈등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만큼, 규제 마련과 아울러 근본적인 공동체 의식 개선도 시급해 보인다.
이에 청주시 서원구에서도 그 마음을 여는 공동체문화 조성의 일환으로 지난 7월부터 '윗집에 아이가 살고 있어요'란 특수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관내 어린이집에 층간소음분쟁 예방 및 공동주택 예절교육과 관련한 자료를 제공해 체계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특히 오는 추석명절을 앞두고 '서원어린이 이웃사랑 주간'을 정해 집중적으로 어린이집 아동들에게 층간소음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이웃들에게 이해와 감사의 손편지를 작성해 직접 전달해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무작정 내 아이의 자유만을, 또는 아랫집으로서의 주거환경 보장만을 주장하며 원수같은 이웃으로 괴로워하기보다는 마음의 벽을 허무는 따뜻한 손을 먼저 내밀어보면 어떨까? 층간소음의 원인제공자인 당사자로서 내가 먼저 아이와 함께 아랫집으로, 옆집으로 마음을 담아 먼저 손을 내민다면 그 손을 따스히 잡아줄 이웃을 분명 만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유럽속담에 집을 사지 말고 이웃을 사라고 했다. 내 이웃과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윗집·아랫집·옆집이라는 또 다른 집들까지 절로 생기게 되는 셈이다. 지금 나의 머리 위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그 소음이 나의 아이, 또는 미래의 나의 아이, 나의 손주의 발소리가 될 수도 있으며, 오늘 밤 내 아랫집에서 듣고 있을 나의 발걸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자. 지금, 당신의 윗집엔 아이가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