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원로 김기덕 감독이 83세를 일기로 지난 주 세상을 떠났다. 대학에서 후진 양성 활동을 이어가긴 했지만 1977년 '영광의 9회말'이 마지막 작품이고 보니 젊은 세대들은 노장 김 감독을 현역인 동명의 다른 감독으로 오해하고 숱한 댓글을 달았다. 동일 분야에서 같은 이름을 쓰니 오해를 살 만도 했다. 한국문인협회에서는 동명이인이 있을 경우 뒤에 입회하는 회원에게 이름을 바꾸도록 권고한다. 필자의 한국문협 등록이름은 이규식(평론)이다. 필명을 짓거나 이름을 갑자기 바꾸기도 어려운 노릇이라 분야를 병기하는 것으로 이름이 같은 문인 한 분과의 혼동을 피했다.

아무튼 57세 젊은 감독의 별세로 오인한 팬들의 충격은 한때나마 컸을 것이다. 그러나 1960-70년대 우리나라 흥행영화 메이커였던 김기덕 감독의 별세소식 역시 한국 현대영화의 역사를 돌이켜보게 한다. 꼭 50년 전 김기덕 감독이 만든 SF영화 '대괴수 용가리'<사진>가 떠오른다. 지금이야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산과 고층빌딩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해일, 지진 등이 박진감 있게 펼쳐지는 첨단 영상시대여서 반세기전, 조잡하게 보일 수도 있는 괴물 영화를 해묵은 B급영화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주로 미니어처 사용과 특수촬영, 특수효과로 이루어진 '대괴수 용가리'는 지금 봐도 감탄할 대목이 적지 않다. 비록 일본 기술진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지만 발상이나 시나리오, 연기 그리고 영화 곳곳에서 비치는 문명비판과 인간탐구의 철학적 메시지는 1960년대라는 시대의 제약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후 우리 영화계에서는 여러 편의 괴물영화가 제작되어 100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하였고 어떤 영화는 마케팅에 관련하여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는가 하면 정석 영화제작 기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극장 배급을 거부당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전, 환경오염과 생태파괴 그리고 나날이 피폐해지는 인간성의 문제 앞에서 앞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의 괴물영화 출현이 점쳐진다. 오로지 개발과 근대화라는 경직된 가치관에 싸였던 1960년대에 발상의 폭을 확장한 영화 '대괴수 용가리'를 만든 고 김기덕 감독의 실험적 작가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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