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시론]

대전 대덕밸리는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의 본산이다. 10㎞ 이내 거리에 핵심적인 원자력 연구기관, 산업체, 규제기관, 교육기관이 밀집해 있으며 근무하는 전문 인력만 6000여 명에 달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원자력 기술 자립을 이뤘고,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신형 원전 APR1400과 요르단에 수출한 연구용 원자로도 개발했다. 대덕밸리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원자력 기술 집약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핏 비슷해 보이는 원자력 관련 기관들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 기회를 통해 대덕밸리의 원자력 기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덕밸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원자력 전문기관은 1959년 설립된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이다. KAERI는 국내 유일의 원자력종합연구기관으로서 그동안 한국표준형원전 기술 구축과 신형 원전 기술개발, 핵연료 국산화, 연구용원자로 국산화 및 수출, 방사선 기술 선진화, 원자력 안전기술 선도 등을 통해 국가 경쟁력 제고와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해왔다. 현재 소형원자로 SMART를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기 위한 상세 설계도 사우디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원자력 이용에 따른 방사선 재해로부터 국민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원자력 안전규제 전문기관이다. 원자력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 대응 과정에서 KINS 전문가들이 활약하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은 원자력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국내 원자력 활동의 국제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설립된 핵비확산 및 핵안보 전문기관이다.

대덕밸리에는 중요한 원자력 산업체들도 다수 위치하고 있다. 한전원자력연료는 원전에서 사용되는 핵연료를 설계·제조하는 기업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UAE 원전에 사용될 핵연료도 전량 공급한다.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은 상용원전 관련 대형 기술개발사업의 중심 역할을 해왔으며, 가동 원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사 역할을 한다. 한국전력기술 원자로설계사업단은 원전의 핵심계통이라 할 수 있는 원자로계통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대기업과 어울려 원자력 및 방사선 분야의 벤처, 중소기업들도 대덕밸리에 많이 위치하고 있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창의적인 연구를 지속해 왔다. 이를 통해 국내 원자력 전공 박사급 인력의 절반 이상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교육과 연구를 통해 쌓아온 공로를 국제적으로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표준연구원, 한국전력연구원 등도 원자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연구를 수행한다.

이렇게 많은 원자력 관련 기관이 대덕밸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서로간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관 본연의 기술개발이나 교육, 연구 활동에 더욱 충실하면서도 지역민들과의 효과적인 소통 채널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원자력 기관들과 지자체, 언론사 등이 함께 협력해 원자력, 방사선, 나아가 국가 에너지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논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이 과정에서 원자력 기관의 일방적 홍보로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이 강사진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시민들이 활발하게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 시민 대학이나 지자체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덕밸리의 원자력 유관 기관을 연계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시도할 만하다. 앞으로 이러한 노력들이 추진되어 대덕밸리가 원자력 기관과 시민 간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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