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현수 나음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투데이포럼]

정신과 의사는 트라우마(심리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 병리와 성격적 특성, 지지 체계, 스트레스 요인 등을 종합하여 일종의 심리적 수술을 하거나 증상 회복을 위한 약을 처방합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치료를 통한 문제 해결과 증상 제거뿐만 아니라 개인의 긍정성(사랑, 기쁨, 믿음, 희망, 용서)도 중요합니다. 긍정성을 키운다고 상처 다루기를 회피하는 것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지만, 상처를 잘 치료한 뒤 회복력은 긍정성에서 나옵니다. 그중 고통을 치유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희망입니다. 고통이 지속되는 현재에 머물러 있지만, 더 나은 미래를 바라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고통을 치유하는데 큰 힘을 발휘합니다.

희망이란 무엇일까요. 하버드 의대 정신과 의사인 조지 베일런트의 저서 행복의 완성(Spiritual evolution)에서 희망(hope)은 소원(wish)과 구분합니다. 소원은 언어적이며 좌뇌 영역이며, 희망은 심상으로 이루어지고 우뇌 영역입니다. 소원을 비는 것은 별다른 노력이 들지 않고, 그저 소원을 비는 말에서 그칩니다. 희망은 종종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실제적인 삶에 반영되어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얼핏 보면 희망과 소원은 비슷하지만, 소원은 수동적이고, 인지적이며, 오히려 자신의 잠재적인 힘을 약화합니다. 희망은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우리의 능력을 반영하여 상황을 대처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희망을 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상황과 나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상황을 과대평가하거나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두 번째, 희망은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막연한 낙관이나 너무 높은 기대는 오히려 좌절감을 가지게 합니다. 세 번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삶의 불확실성과 유한함을 수용하고 슬픔을 품은 뒤에 비로소 진정한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희망은 상황이 변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내가 능동적으로 가치 있게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합니다.

심리적 상처(트라우마)는 희망을 절망으로, 나와 내 주변에 대한 믿음을 불신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삶을 방향키를 흔들어놓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좌절시킵니다. 희망의 상실은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을 초래합니다. 트라우마로 희망을 잃은 누군가 있다면 심리상담, EMDR, 최면치료와 같은 방법으로 희망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희망의 상실은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지만, 희망의 회복은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아픔으로 되돌리며 다시 회복력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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