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화 을지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시선]

최근 의료계 변화 중의 하나는 인공지능의 도입이다. 알파고로 시작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올해 초 한 대학병원이 왓슨을 도입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여러 가지 기대와 우려 속에 왓슨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진단검사의학과는 병원에서 기술의 발전이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최근 30여 년 동안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검사실의 처리용량은 자동화와 전산화 덕분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모든 검사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처리할 수 있는 검체의 양은 많아야 200~300개 정도였다. 병원의 전산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라서 검사의 처방부터 결과보고까지의 모든 과정을 종이에 써야 했고, 결과보고지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수술에 필요한 검사결과를 확인하지 못해 수술이 지연되는 일도 있었다.

이제 대형병원의 진단검사의학과에서는 검체를 접수하고 원심분리를 한 후 장비에 장착하거나 검사가 끝난 검체를 장비에서 꺼내는 일과 같은 단순작업은 로봇 팔과 자동화 트랙이 하고 있다. 자동화 트랙과 연결된 컴퓨터에는 과거 사람이 일일이 하던 작업의 일부를 미리 걸러주는 내용들이 프로그램화되어있다. 용혈되거나 응고되어 검사에 부적합한 검체를 걸러내고, 이전 결과와 너무 차이가 나서 그 환자의 검체가 맞는지 의심되는 경우 다시 검사를 해서 확인하도록 되어 있고, 수 천 개의 검사결과 속에서 환자에게 어떤 조치를 즉시 취해야 하는 경고치를 바로 알려주기도 한다. 자동화시스템과 연결된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검체를 폐기일자에 자동으로 버리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했던 사람의 단순노동을 감소시켰다. 또한 잘 짜여진 알고리즘은 정해진 규칙대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실수로 인한 시간의 낭비를 막아주었다. 이러한 시스템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제한된 비용으로 많은 양의 검체를 당일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검사는 장비가 다 하는 것이고, 사람은 별로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생겨났다. 과연 로봇이 대체한 단순작업,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검사 장비들과 효율성 향상을 위해 도입된 자동화의 알고리즘 도입 때문에 사람이 할 일이 검사실에서 없어졌을까? 매일 매일의 분석환경이 변한다면 환자의 상태가 정말 변한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고 진료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오늘 달라진 환자의 상태에 대한 검사결과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어제와 동일한 분석환경이어야만 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과정이 '검사실의 질관리'이다. 단순 작업이 줄어든 대신에, 자동화와 일찍이 도입된 인공지능 알고리즘 덕분에 검사에 관련되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한 관리, 결과의 적절성에 대한 검토와 같은 검사의 질관리에 사람이 더욱 집중해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필자가 검사실에서 겪어온 바로는 단순 업무와 사람이 하는 실수와 잘못은 현격히 줄었지만, 가장 적절한 비용 효율성을 고려한 검사시간과 운영에 대한 고민은 늘어났고, 질관리와 연관해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로 더 바빠졌다. 최적의 검사실 환경을 위한 시스템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위한 결정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하고, 이는 의료를 비롯한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쓰나미와도 같은 이 변화에 그냥 휩쓸려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이 가장 최선인지 지금부터라도 성실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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