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거운 물집을 겪는 지금, 밥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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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아이클릭아트 제공
▶신문사 일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수천여건의 기사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사진도 수천 장이다. 그러다보니 읽기 싫은 거, 보기 싫은 것을 어쩔 수 없이 봐야할 때가 있다. 워낙 '쓰레기'들이라 당장 '휴지통'으로 버리고 싶지만 그런 허섭스레기 다 버리고나면 지면에 담을 게 없다. 그만큼 이 세상은 읽고 싶은 것보다는 꼴 보기 싫은 것들 투성이다. 참으로 신문 만들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옛날이 좋았다. 오히려 그땐 보고 싶은 거, 읽고 싶은 것만 엄선해 만들 수가 있었다. 다소 고압적이긴 했지만 '쓰레기'들을 진짜 쓰레기 취급할 수도 있었다. 이젠 세상 좋아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레기들이 설쳐댄다. 뭐라고 혼내면 왜 그러냐고 들이댄다. 그런데도 모두가 착한 척만 한다. 좌파까지 착한 척을 하니, 쓰레기들이 더 넘쳐난다.

▶흐트러진 머리, 초점 잃은 눈빛, 핏기 없는 연초록 안색, 불만 가득한 표정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며 인생 허망함을 목도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어느 누가 이런 그림을 상상이나 했나.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누군데. 난 대통령의 딸이야. 모두들 내 앞에서 조아리고 있어. 난, 박그네라고,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네…." 어느 날 갑자기 탕자가 돼버린 또 한명의 인물도 세상사 무상함을 일깨운다. "난 별(☆☆☆)의 아들이야. 대한민국 1위 상속자라고. 모두들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잖아. 나, 이재벌이야.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있는 재벌…." 둘의 몰락을 경배한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나라꼴이 이렇게 됐다. 하지만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지는 마라. '알았으면 막지 그랬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우린 어떠한 일이 터지고 난 후에야 '그때 벌써 알았었는데'라고 말한다. 단순히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으면서도, 나중에는 '알고 있었다'고 착각한다. 아는 게 없을수록, 퍼즐에 억지로 끼워 넣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하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뉴스는 온통 그림자다. 그림자는 최소한 배후에 빛이 있어야한다. 그런데 그 빛마저도 없다. 그림자는 분신(分身)이기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지금의 그림자는 누군가의 빛을 막아서는 검은 그늘일 뿐이다. 이 시대 그림자는 숙명적인 상처다. 나쁜 흔적만을 남기는 고약한 빛이다.

▶미워지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미움이란 그림자 같은 것이어서, 다분히 상대적이다. 그림자는 빛의 반대쪽에서 웅크리는 습성이 있다. 떨쳐내고자 발버둥을 칠수록 악착같이 더 붙어 다닌다. 미움을 지우는 방법은 미움을 껴안는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안다는 게 더 괴롭다. 보기 싫은 것을 보고, 듣기 싫은 것을 들어야하는 밥벌이는 고단하다. 더구나 떠날 때를 알면서도, 떠날 수 없을 때 더 슬퍼진다. 삶의 뜨거운 물집을 겪는 지금, 밥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고민한다. 그림자는 빛을 이길수 없다. 그러나 거머쥘 수는 있잖은가.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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