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진 머리, 초점 잃은 눈빛, 핏기 없는 연초록 안색, 불만 가득한 표정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며 인생 허망함을 목도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어느 누가 이런 그림을 상상이나 했나.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누군데. 난 대통령의 딸이야. 모두들 내 앞에서 조아리고 있어. 난, 박그네라고,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네…." 어느 날 갑자기 탕자가 돼버린 또 한명의 인물도 세상사 무상함을 일깨운다. "난 별(☆☆☆)의 아들이야. 대한민국 1위 상속자라고. 모두들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잖아. 나, 이재벌이야.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있는 재벌…." 둘의 몰락을 경배한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나라꼴이 이렇게 됐다. 하지만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지는 마라. '알았으면 막지 그랬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우린 어떠한 일이 터지고 난 후에야 '그때 벌써 알았었는데'라고 말한다. 단순히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으면서도, 나중에는 '알고 있었다'고 착각한다. 아는 게 없을수록, 퍼즐에 억지로 끼워 넣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하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뉴스는 온통 그림자다. 그림자는 최소한 배후에 빛이 있어야한다. 그런데 그 빛마저도 없다. 그림자는 분신(分身)이기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지금의 그림자는 누군가의 빛을 막아서는 검은 그늘일 뿐이다. 이 시대 그림자는 숙명적인 상처다. 나쁜 흔적만을 남기는 고약한 빛이다.
▶미워지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미움이란 그림자 같은 것이어서, 다분히 상대적이다. 그림자는 빛의 반대쪽에서 웅크리는 습성이 있다. 떨쳐내고자 발버둥을 칠수록 악착같이 더 붙어 다닌다. 미움을 지우는 방법은 미움을 껴안는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안다는 게 더 괴롭다. 보기 싫은 것을 보고, 듣기 싫은 것을 들어야하는 밥벌이는 고단하다. 더구나 떠날 때를 알면서도, 떠날 수 없을 때 더 슬퍼진다. 삶의 뜨거운 물집을 겪는 지금, 밥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고민한다. 그림자는 빛을 이길수 없다. 그러나 거머쥘 수는 있잖은가.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