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경 중부대학교 홍보과
[에세이]

유난히 무덥고 비도 많이 내린 올 여름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아직까지 한낮에 쏟아지는 햇빛은 제법 강하지만 입추와 처서가 지나면서 수런수런 번져가는 가을의 기운을 시나브로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가을이란 단어에 따라다니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많다. 수확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고독의 계절 등과 같은 표현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아도 책 몇 권은 읽어야 할 것 같은 약간의 부담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평소 책읽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던 법정스님은 “사람을 자꾸만 밖으로 불러내는 가을은 독서하기 가장 부적당한 비독서지절(非讀書之節)” 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 가을은 비가 내리는 날이 적고 무엇을 해도 좋은 선선한 날들이 많아 실내 보다는 야외활동을 하는데 적합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로부터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책이란 읽을 때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늘 가까이 해야 하는데, 날씨가 좋은 가을에 야외활동을 너무 많이 하다보면 책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 이를 염려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평소 얼마나 좋은 책을 자주 읽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책읽기 현실은 경제규모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할 때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문화관광부가 실시한 ‘201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연평균 독서율은 65.3%인데, 이는 한 해 동안 책 한권이라도 읽은 성인이 10명 중 약 6.5명 정도 된다는 뜻이다. 전년도와 비해 6.1% 줄어든 것이며, 10년 전인 비교해 보면 21.5%나 감소한 것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 디지털 기기의 보급 확대와 많아진 여가시간과 취미활동의 다양화 등으로 전반적으로 독서율이 감소하고 있다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들의 독서율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국가별 연평균 독서율이 한 나라의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실제로 각종 경제지표나 국가 경쟁력을 나타내는 여러 지수들이 높은 스웨덴, 덴마크, 영국,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독서율은 한결같이 80%를 상회한다는 점이다. 국가의 위상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한 개인의 보다 나은 삶의 질 측면에서도 책 읽는 문화는 확산되어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은행 계좌의 잔고라면, 독서는 인간을 풍성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식을 범위를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독서를 통해 얻은 다양한 지식이 자기성찰, 사색과 어우러질 때 지혜로 발전한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 책을 읽으면서 재충전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책 속의 좋은 표현이나 지식들은 책을 읽은 사람의 말과 글로 녹아들기 마련이어서 많은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말과 글에 품위가 더해져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도 좋아지게 된다.

“보물섬을 약탈한 해적선보다 더 많은 보물이 책 안에 있다”는 월트 디즈니의 말처럼 독서의 이로운 점은 하나하나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치고, 책을 읽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이 풍요로운 계절에 높고 푸른 하늘과 살찌는 말(馬)만 지켜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으며 지식과 교양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적으로 보다 풍성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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