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 청북교회 목사
[화요글밭]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빌리지 않아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특별히 고립을 자초하거나 사고 등으로 조난당하지 않는 한, 인간은 더불어 살 수밖에 없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소통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인간은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소통의 방법을 연구해 왔고 언어, 기호, 통신 등 소통의 발달이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을 물리치고 인류의 역사를 독점하는 길을 열었다. 그럼 현대인들은 원활한 소통을 하고 있는가.

17~18년 전으로 기억한다.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 되지 않았고, 인터넷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약할 때 한 대형 신문사에서 '인터넷 서바이벌대회', 즉 '인터넷으로 살아남기 대회'를 한 적이 있었다. 5~6명의 지원자들을 호텔의 각방에 입실시켜서 일주일 동안 한 번의 외출도 없이 인터넷으로만 필요한 옷을 사서 입게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게 하며 직장의 업무를 정확하게 해내라는 미션을 주었다. 앞으로 인터넷 시대가 되면 얼마나 편리할지, 그리고 전산망을 통해 얼마나 편리하고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지를 미리 체험해보는 대회였다. 그 대회에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가졌고, 미래의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이벤트였다.

그리고 지금 그 기대에 맞는 세상이 됐다. 사람들은 거리, 계층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살면서 맺어진 관계성에 상관하지 않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많은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심지어 사물과 사물이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음에도 소통의 부재를 호소한다. 정치인도, 기업인도, 문화계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고, 어느 공동체이든지 소통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소통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보인다.

시인 정현종은 시 ‘섬’에서 소통이 부재하고, 관계가 끊어진 현대인의 외로움을 이렇게 진단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제 사람들은 섬이 돼 누구의 방문도 쉬이 허락하지 않고, 나 또한 섬이 돼버린 다른 사람에게 가기를 두려워한다. 섬과 섬 사이의 바다는 건널 수 없는 장벽이 돼 쉽게 오가지 못하는 우리네 마음의 표현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다른 이의 마음 속으로 진정 가고 싶은 현대인의 소통에 대한 갈망을 절박한 시어(詩語)로 표현했다.

오늘날 너무나도 편리한 첨단의 소통 수단이 난무하지만 거기에 바른 소통이 없다. 정부 정책이나 정치인의 선전, 직장의 조직사회도 소통을 주장하면서도 일방적이다. 대부분의 SNS를 보면 자기 과시나 자랑을 통보하는 일방적 게시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곳에선 진정한 소통이 이뤄질 수 없다. 기계적, 혹은 전산적 소통은 일방적 통보는 수월하게 했을지 몰라도 사람과 사람, 공동체 구성원 간의 마음이 담긴 소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에게 가기 전, 타인이 내 마음에 들어올 수 있도록 열어준 그 심정에 길이 열리고,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간 그곳에 다리가 생긴다.

옛날에는 다른 종과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소통을 필요로 했다면 이제는 풍성한 삶을 위해서 필요하다. 성공적인 소통은 나를 이해시키려고 하기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공감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했다. 이보다 더 좋은 마음 열기가 있을까. 주장하는 말보다 들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자. 그곳에 소통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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