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휴먼스토리]
“소녀땐 꿈만 꾼 공부, 할머니때 이뤘네요”
“남편 잃고 36년간 목욕탕 일…글 못읽어 버스타기 두려웠죠”
야학서 ‘81세 만학의 꿈’ 실현… 장애인학생 가르치는게 소망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상을 수상한 김용녀 할머니의 '때 늦은 공부'라는 시화 작품.
“서른 아홉에 남편 잃고 삼형제 키우느라 공부는 꿈도 못 꿨는데 여든 넘어 이름 석 자, 동네 간판이라도 읽고 싶어 연필을 들었네요”

김용녀(81·대덕구 비래동) 할머니는 배움에 있어 ‘늦은’ 나이를 넘어 이미 ‘지난’ 나이로도 볼 수 있는 여든에 한글 공부를 처음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팔·다리 장애판정을 받은 불편한 몸이지만 8개월 전 지인의 권유로 대전모두사랑장애인야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한을 가슴 속에 평생 묻고 살았던 김 할머니는 “오빠들이 내 교과서를 불 속에 다 태워버렸다”며 “철없던 시절 그 핑계 삼아 공부 안해도 된다는 마음에 마냥 좋아했다”고 칠십년도 더 넘은 과거를 회상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36년간 목욕탕 세신사로 일한 김 할머니는 그동안은 자식 키우느라 바빠서 배울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아들 셋 장가보내고 나니 그제야 생활 속 불편은 물론 삶의 회한이 몰려왔다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는 “이름도 쓸 줄 모르고 노선도 볼 줄 몰라 버스 타기도 두려웠다”며 “그러던 중 동네 주민이 같이 한글을 배워보자고 손을 내밀어 용기를 냈다”고 답했다.

현재 대전모두사랑장애인야학에 다니는 학생 가운데 80대는 김 할머니가 유일하다. 그때부터 김 할머니는 주 5일 하루 4시간 씩 자원봉사자들에게 한글 교육을 받았고,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우연한 기회로 참가한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때 늦은 공부’라는 김 할머니의 작품이 유네스코 사무총장상 수상작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자작시는 일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한글을 배우게 된 기쁨과 희망이 순차적으로 담겨 있다. 김 할머니는 내달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시상식을 앞두고 사춘기 소녀처럼 수줍어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 나이에 글을 읽고 쓰게 된 것 만으로도 기쁜데 이렇게 귀한 상까지 받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며 “여든이 넘어가면 보통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게 된다. 여기서 인생의 마침표를 찍지 않고 더 많이 배우고 펼치라는 의미로 감사히 받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야학에 다니는 손주 같은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쳐보는 것”이라며 “그 날이 올 수 있도록 건강관리와 한글 공부에 소홀하지 않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 23일 만난 만학도 김용녀 할머니가 뒤늦게 배운 글 공부를 자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최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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