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스위스 북부 장크트칼렌 지역에서 140년 된 석조건물<사진>을 원형 그대로 20m 경사 밑으로 옮기는 작업에 성공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당초 건물 옆에 요양시설을 지으려 했는데 부지가 부족하여 건물을 헐 예정이었으나 지자체에서는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 철거를 허용하지 않았다. 2700t에 이르는 무게도 그렇고 경사 아래로 옮기는 난제 앞에서 장시간 계획을 수립하고 12개의 레일을 설치하여 지하실을 제외한 건물을 그 위에 올렸다. 23억 7000만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원형 그대로 이전이 완료된 것이다. 일찍이 시계를 비롯하여 테마파크 놀이기구 제조기술 등이 발달한 스위스의 정밀공학 수준이라면 이 건물을 해체하여 다시 복원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련만 엄청난 비용을 들여 레일을 이용하여 통째로 들어다 놓았다. 분해, 조립 시 발생할지 모르는 변형과 착오를 방지하여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의지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여년 전 서울 을지로 스카라 극장. 문화재청에서 등록 예고하여 근대건축문화재로 지정하려 하자 여기에 반발한 건축주는 건물을 헐고 신축을 강행하였다. 80년 역사의 이 독특한 건물은 속절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건축주 동의 없이는 강제적으로 문화재 지정이 어려운 현실이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아쉬운 일이다. 일제강점기 약초극장, 광복 후 수도극장으로 서울의 문화명소였던 스카라 극장의 소멸과정은 실로 허망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필자의 집에서 일부 촬영한 영화 '오늘도 내일도'(이영 감독, 박노식 김의향 최남현 주연)라는 흑백영화를 보러 부모님과 스카라 극장의 옛 이름 수도극장으로 나들이했던 오랜 추억도 이때 함께 사라졌다. 고딕양식의 둥근 원형 돌출부가 인상적이었던 스카라 극장과 23억원을 들여 그대로 옮겨 보존하는 스위스 자콥 빌라, 두 문화유산의 운명을 떠올리며 여러 생각에 잠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