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 충북본사 편집부국장
[데스크칼럼]

올 여름들어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매주 '영화 순례'를 다녔다. '리얼', '군함도', '덩케르크', '택시운전사' 등등. 매주 영화 한편 씩을 소화했다. 영화관을 자주 찾은 건 무더위 탓이 크지만 영화가 복잡한 일상을 잠시 잊게하는 일종의 훌륭한 도피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직업이 기자다보니 이슈가 되는 영화를 보지 않으면 트렌드에서 뒤쳐진다는 우려가 큰 데다 어디가서 '말 참견'이라도 할라치면 영화보기는 필수인 탓이다.

우리가 이렇게 영화관을 쉽게 찾는 것은 문화적인 욕구에다 책,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과 비교해 지불하는 비용이 크지 않은 이유도 있다. 1만~2만원 하는 책을 사서 읽으려면 최소 1주일, 길게는 한달여를 투자해야 하지만 영화는 그저 2시간 남짓이면 된다. 머리가 아플 필요도 없다. 좋아하는 영화를 찾아 즐기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다보니 문제는 영화로 몰리는 인구가 너무 많아 ‘문화 편식’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1000만 관객 영화를 만난다. 각 분야의 문화가 고루 향유되고 발전돼야 하지만 한 곳으로만 몰리는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맹목적으로 유행을 쫓는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라 부른다. '밴드웨건 효과'는 미국 서부개척 시절 유랑극단이 찾아오면 그 뒤를 쫓아갔다는 말에서 유래한다.

정치학에서는 선거 운동이나 여론 조사 등에서 우위를 점한 후보 쪽으로 유권자들이 쏠리는 현상을 말하고 경제학에서는 다른 사람의 소비 행태에 영향을 받는 소비자들의 모습을 가리킨다. 어떤 상품이나 문화에 대해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지기 시작하면 이런 경향을 쫓아가는 새로운 소비자들이 나타나 수요의 증가를 가져오는 현상을 말한다.

결국 밴드웨건 효과는 유행을 따르거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배제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서 유발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영화란 집단 문화의 영향이 크다. 최근 문화계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영화였다. 인구가 5000만 명인 한국에서 1000만명의 관객을 넘는 영화들이 너무 많이, 또 쉽게 나온다는 우려의 이야기였다.

일본에서 유학을 한 한 인사는 "일본에선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찾아서 보는 일이 많다. 남들이 보는 영화니까 봐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며 "그것이 한국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1억 2600만 명이 사는 일본에서 '1000만 영화'가 결코 나오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실 맞는 이야기였다.

관객이 많이 드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문제는 심각하게 영화로만 몰리는 문화 편식이고, 이로인해 왜곡되고 집단화되는 잘못된 여론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우리는 최근에도 영화 '군함도'에서 '스크린 쿼터' 독점과 함께 '친일 논란' 문제들을 목도했다.

개인적인 바람일 수도 있지만 이제 더 이상 1000만 관객이니, 시청률이 몇 %를 넘어섰느니 하는 말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고 남과 다른 '개성과 취향'이 인정받고 존중되는 세상이 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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