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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핵우산과 우산

둘이 걸으면 왼쪽 어깨가 젖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라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2017년 08월 17일 목요일 제19면     승인시간 : 2017년 08월 16일 18시 45분

▶비가 우두둑 내린다. 하늘에 천공이 난 듯 쏟아 붓는다. 우산이 없어 대략 난감이다. 피할 수도, 피해갈 수도 없다. 아열대기후로 변한 지금, 비는 스콜처럼 내린다. 맑았다가 찌푸리고, 인상을 썼다가도 이내 주름을 편다. 그렇다고 지나가던 건물에 기댈 수도 없다. 처마가 없다. 타인의 젖은 어깨를 한 뼘도 허락하지 않는다. 우산 같은 처마는 없다. 정감이 사라진 돌덩이에서 자괴감만 느낄 뿐. 이제 비가 오면 그냥 뛰던지 맞던지 양자택일이다. 비를 맞는 것이 비를 피하는 터닝 포인트다.

▶세상엔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밀애를 나눴던 어젯밤의 그녀가 오늘은 딴 남자의 여자가 돼있기도 한다. 잘나가던 부장이 별안간 사표를 내고 종적을 감춘다.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포인트다. 조금이라도 낌새를 눈치 챘다면 '별안간'이 아니라 '그냥 별난'이야기밖에 안 된다. 재미도 없으니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면 타인의 속사정은 그저 타인의 사정일 뿐이다. 사람들은 관심 있는 척 하지만 자신과 관계없는 일엔 절대 관심이 없다. 타인의 어깨가 젖지 않도록 우산을 씌워주지 않는다. 예전엔 둘이 걸어도 자신의 왼쪽 어깨가 젖도록 기우뚱해서 우산을 들었었는데….

▶‘핵(核)우산’을 쓰고 있는 김정은을 갖고 노는 건 미국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다. 이들은 조력자가 아니라 방관자다. 김정은은 중국과 러시아의 ‘우산’을 썼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북한의 어깨는 젖게 돼 있다. 중국·러시아는 힘 안들이고 '북한 장사'를 하는 장사치들일 뿐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핵을 싣고 미국 본토까지 날아갔다고 치자. 어떻게 될까. 이후 상상은 각자의 몫이다.(지금 상상하고 있는 것이 팩트다). 게임에도 체급이 있다. 상대가 안 되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의 영원한 우방인가. 맹방(盟邦)이라고 굳게 믿고 싶겠지만, 우린 미국의 핵우산(한미상호방위조약) 밑에서 초라하게 은거하고 있을 뿐이다.

▶겁 없는 척 하는 자가 사실은 겁쟁이다. 겁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강한 척 한다. 김정은의 엄포를 보면서 동시에 겁을 본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무엇이 두려운지조차 잊었다. 두려운 사람의 얼굴엔 작의적인 미소가 그득하다. 만면(滿面)의 행색에서 패배가 읽힌다. 두렵지 않다면 웃음이 나올 수가 없다. 북한의 핵우산, 중국과 러시아의 접이식 우산, 그리고 미국의 핵우산과 우리의 그냥 우산…. 우리 어깨는 열려있다. 어느 누구도 정직한 우산을 받쳐주지 않는다. 비가 오면 흠뻑 젖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아니라 게임의 룰을 모르는 무뢰한들의 전쟁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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