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난지도 의병총 등록문화재 예고... 유일한 해상 도서 근거지 투쟁 의의
면천보통학교 3·10 만세운동 등 당진지역 대표적 항일역사 꼽혀

▲ 면천공립보통학교 만세운동 재현행사 모습. 당진시 제공
▲ 소난지도 의병총. 당진시 제공
제72주년 광복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8일 문화재청이 소난지도 의병총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예고하면서 충남 당진지역의 대일항쟁 역사가 주목받고 있다. 예고기간인 30일 동안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내달 6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소난지도 의병총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상 도서를 근거지로 항일투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의의와 가치가 매우 크다.

조선시대부터 삼남지방의 조세선 기항지였던 소난지도는 식량 확보가 용이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의병들이 내륙으로 이어진 수로를 이용해 주재소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는 등 내포지역 의병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08년 3월 15일 처절한 항일의병전쟁이 일어난 장소였던 이곳의 의병활동은 크게 두 번으로 나눠진다. 1906년 당진 면천 출신인 최구현 의병장을 중심으로 면천성을 공격했던 사건과 1907년 정미조약에 의한 군대 강제해산 이후 홍원식 의병장의 활약했던 시기로 구분된다.

특히 1908년 3월 15일 당진지역 의병운동의 근거지를 소난지도로 판단한 홍성경찰분서가 이곳에 기습공격을 감행했고, 이들에 맞서 싸운 홍원식 의병대는 격렬한 전투 끝에 41명이 전사하고 50여명이 행방불명 됐다.

이들의 항거는 이후 구전으로만 전해오다가 1970년대 석문중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힘으로 고증작업이 이뤄졌으며, 이후 2003년 당진시가 소난지도 의병 항쟁 학술고증에 나서면서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후 2009년 이곳에 의병 항쟁 추모탑이 건립됐으며, 올해 6월 1일에는 전국 의병의 날 기념식도 열려 내포지역 항일운동역사의 중심지로 부각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소난지도 의병항쟁은 도서를 근거지로 항일투쟁을 벌였다는 점뿐만 아니라 의병항쟁의 역사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선양사업을 지속해 왔다는 점도 등록문화재로 예고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소난지도 의병항쟁 외에도 국내 3.1운동의 대표적 독립운동사 중 하나인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보다 10년이나 앞선 학생주도의 독립운동이었던 면천보통학교 3·10만세운동도 당진지역의 대표적인 항일운동 사례로 꼽힌다.

면천보통학교 3·10만세운동은 당시 16세에 불과했던 면천보통초등학교 4학년 원용은 학생과 동급생 박창신, 4학년 급장이었던 이종원 등이 면천면 동문 밖 저수지부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학교 교문까지 행진했던 독립만세운동으로, 당진지역 최대 독립만세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는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진=인택진 기자 intj469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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