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아침마당]

우리는 수많은 유해물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봄철 야외활동을 방해하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대표적이다. 수백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몇 차례 사망사고를 일으킨 불산 등 다양한 유독성 화학물질도 있다. 석탄·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대기오염물질과 원자력발전소 안전 문제의 핵심인 고독성 방사성물질, 최근 문제가 된 질소 과자, 폐암의 주요 원인인 담배 등 열거하기로 하면 끝이 없다.

유해물질에 의한 피해는 우리 인체가 그것에 얼마나 노출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공기, 토양, 물속의 유해물질 농도나 인체 노출량을 관리함으로써 피해를 예방하고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기준과 절차는 사회가 요구하는 안전수준과 현재의 과학기술 지식을 기반으로 마련된다. 나아가 식품, 원자력 등 중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인 규제기구를 통해 집중 관리된다.

문제는 상당수의 유해물질에 대한 지식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새로운 물질의 유해성을 규명하려면 오랜 기간이 필요하고, 합성 감미료 사카린의 사례처럼 유해성 여부에 대한 판단 자체가 바뀌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 결과 국제기구나 정부당국에서 정한 안전관리 기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질 때도 있고, 사이비 전문가의 비과학적인 선동이 대중의 믿음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물질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가장 현실적인 잣대가 안전기준임은 분명하다. 특히, 어떤 물질에 대해 유해성이 밝혀진 기간이 길고,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 기준은 여러 불확실성을 감안해 충분한 여유를 두고 설정된다. 노출량이 안전기준을 넘었다고 해서 곧 피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기준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양한 유해물질 가운데 가장 확실한 과학기술 지식에 근거해 안전기준이 설정된 대상은 아마도 방사선일 것이다.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자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추적 연구, 방사선생물학 연구, 다양한 원자력시설 운영 경험 등을 통해 수십 mSv(밀리시버트) 이하의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없거나 미미함을 확인해왔다. 이를 반영해 우리나라에서는 정상운전 중인 원자력시설의 작업자는 연간 20mSv, 일반인은 연간 1mSv를 방사선 선량한도로 정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작업자에 대해 연간 50mSv를 한도로 한다.

국가에 따라 자연방사선량이 연간 1.5~10mSv로 차이가 크지만, 이것이 암 발생률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또한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한번 왕복하면, 우주방사선이 증가하여 약 0.2mSv의 자연방사선을 추가로 받는다. 일반인에 대한 연간 선량한도인 1mSv는 매우 낮게 설정된 값이며, 방사선량이 1mSv보다 낮아도 위험하다는 일부의 주장은 과학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위험 요인을 처음 대할 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안전하게 관리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는 도시가스를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고, 버섯과 복요리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유해물질의 존재 자체를 없애서가 아니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확고한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엄격한 기준에 따라 관리되는 방사선에 대해, 기준치의 10분의 1, 100분의 1도 위험하다는 주장은 대중에게 근거 없는 공포감만 유발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유해물질의 위험성은 실제 노출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과 최상의 과학기술지식에 근거한 안전기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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