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화 을지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시론]

얼마 전 지인의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동영상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설마 했었는데, “The future of drawing blood; A robot phlebotomist(채혈의 미래, 로봇채혈사)”에 관한 동영상이었다. 로봇이 사람의 팔에서 혈관의 위치와 깊이를 초음파로 확인하고, 정확하게 알맞은 깊이에 바늘을 찔러서 채혈을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동영상에서는 무리 없이 채혈에 성공했다. 로봇채혈사는 대상자가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온 힘을 다해 팔을 빼지만 않는다면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혈관을 찾아 실수 없이 채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자는 이 로봇 동영상을 보고 채혈이 어려운 환자들, 특히 채혈을 빈번하게 하지만 항암치료 등으로 혈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암환자들이나, 눈으로 보거나 만져봐서는 혈관의 상태를 전혀 짐작할 수 없어서 채혈 때마다 여러 번 찔리게 되는 환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채혈은 어렵지 않은 기술이지만, 잘 되지 않을 경우 환자에게도, 채혈하는 사람에게도 매우 고통스럽다. 필자가 일하는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채혈실은 가장 조심스럽고 어려운 부서이다. 덜 숙련된 직원의 미숙함, 경력직일지라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과 실수, 채혈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진료와 질병에 지친 환자의 짜증, 채혈에 실패했을 경우 환자의 원망과 빨간 혈액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리는 환자 등으로 한시도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혹자는 굳이 채혈을 하는 로봇까지 있어야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이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데는 로봇이 필요하지만, 실업률도 높은데 사람이 가능한 일을 굳이 로봇이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질병이나 건강검진 등의 이유로 채혈의 빈도는 높아질 것이고 더불어 채혈이 어려운 환자들도 늘어날 것이며, 숙련된 직원을 찾기는 여러모로 어려워질 수 있고 시골로 갈수록 의료소외 지역도 점점 늘어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당장 적용되지는 않더라도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병원물류로봇 연구 과제를 다른 기관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 병원에는 작은 주사기에서부터 부피가 큰 환자용 이불 담요까지 매우 다양한 물건들의 이동이 하루 종일 일어나고 있다. 병원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로봇의 사용은 싱가포르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일이다. 물품의 운반과 같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단순한 업무는 로봇이 하고, 사람은 환자와의 교감이나 직접 간호 같은 일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다면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진료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직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다. 국내의 병원들이 주로 고층건물이라서 수직이동을 해야 하는데 사람에 맞춘 규제로 엘리베이터에 로봇을 태우는 일도 쉽지 않을 뿐더러, 화재 예방을 위한 단단한 철문은 로봇이 움직이는 것을 가로막고 있고, 여전히 병원을 찾는 방문객은 많아서 로봇의 주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연구 사업을 진행하는 중에도 로봇 때문에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산업혁명시대에 기계를 파괴했던 것처럼 로봇을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현재 국내의 자율주행 자동차는 여의도에서 시험운행을 하고 있다. 10년 뒤면 사람이 운전을 하는 게 불법이 되고, 사람의 실수나 고의로 인한 끔찍한 교통사고는 없어질 지도 모른다. 필자도 로봇이 열어줄 미래가 장밋빛이라고 만은 생각하지 않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정답이 없는 변화의 격랑기에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부터라도 잘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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