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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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이 미사일(ICBM 대륙간탄도)을 쏘던 새벽, 자다 말고 깜짝 놀랐다. 미사일이 무서웠던 게 아니다. 군대에 있는 큰아들이 첫 휴가를 나오는 당일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188일을 기다렸는데 행여 휴가가 취소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물론 혹자들은 이 난리 통에 무슨 휴가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휴가는 휴가다. 아들은 오매불망 이날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생애 처음 6개월 간 감금 아닌 감금을 당했으니 바깥세상이 궁금한 건 당연하다. 그 마음을 알기에 북한의 미사일은 내 심장을 겨눈 화살 같았다. 같은 시간, 김정은은 미사일이 정점고도 3724.9㎞까지 날아올라 998㎞를 47분12초간 비행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는 미국 본토까지 핵으로 공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NSC)를 주재하던 아침,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4기(基)를 추가 배치하고 '강력 응징'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그간 사드 2기(基) 배치에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음을 지적하며 트럼프 회담에서조차 소신을 굽히지 않았었다. 문대통령의 '변심'은 독한 '작심'이다. 그동안 '당근'만 얘기하다가 '채찍'을 든 것은 그의 절박함을 방증한다. 왜 진작 그러지 않았을까. 어쩌면 좀 더 일찍 화를 냈어야했는지도 모른다. 야당일 때는 죽을 둥 살 둥 반대만 하다가, 여당이 되면 죽을 둥 살 둥 거수기가 되는 정가의 풍경들이 얄궂다. 우린 이 대목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를 떠올린다. 정치권의 숱한 변절과 변심이 오버랩 되는 것이다.

▶김정은이 미사일을 쏘고, 문재인 대통령이 화를 내던 날, 둘째아들은 공군사관학교 시험을 봤다. 이날 육사와 해사, 경찰대도 고사(考査)를 치렀다. 대한민국 취업난(難)이 팩트로 읽혔다. 섭씨 36℃를 넘나드는 뜨거운 날씨에도 응시생들이 바글거렸다. 큰아들은 군대에서 첫 휴가 나오고, 작은아들은 군대를 가기위해 시험을 치르는 광경은 이율배반적인 통증이었다. 사는 것이 강퍅하다보니 청춘들의 가치관과 신념이 달라지고 있다. 돈 벌기 위해 공부에 매달리고, 돈 되는 직업을 쫓다보니 역지사지의 자세를 잃어간다. 어른들의 잘못이고, 나라의 잘못이다.

▶'표 파는 곳'이 맞을까, '표 사는 곳'이 맞을까. 돈은 빌려주는 것인가, 빌려가는 것인가. 근로자를 고용(삯을 주고 사람을 부림)한 것이 맞나, 채용(인재를 등용하거나 사람을 씀)한 것이 맞나.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구 입장이냐에 따라서 갑을이 바뀐다. 그리고 기분이 달라진다. 나를 상대방의 입장에 서게 하고, 나의 영역에 들어온 타자(他者)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게 '역지사지'의 본질이다. 세상은 남남이 모여서 이뤄졌다. 결혼도 살아온 환경이 다른 남남이 모여 같이 사는 것이고, 직장도 다른 생각을 가진 남남이 모여 함께 있는 곳이다. 남남이 모여 잘살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인디언 속담이 일침한다. "그의 신발을 직접 신어보라. 그러기 전까진 그를 판단하지 말라."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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