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준호 ETRI IoT연구본부 연구원
[젊은 과학포럼]

한국인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을 고르라면 필자는 단연 '질문'을 고를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본인 또한 질문하기를 어려워한다. 나서기 힘든 성격으로 입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좋은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혹은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까 두려워 질문을 꺼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소 입사 후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원인을 찾았다. 바로 '환경'이었다.

입사 첫 해, 전공과 다른 과제에 소속되어 골머리를 앓던 필자는 딥러닝 개발환경 설치 중 맞닥뜨린 문제로 긴 시간 고민에 빠져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질문거리는 늘어만 갔고, 인터넷을 통한 지식은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옆 부서에 관련 경험이 많은 연구원이 있었고, 지인의 소개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지척에 있는데도 물을 수가 없다니, 그동안 질문 자체를 어려워하던 필자에게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넘어 자유롭게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 창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필자와 비슷한 뜻을 가진 다른 연구원 두 명이 한 데 모여 푸딩(puddin)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모두 소통에 대한 갈증이 있었지만 저마다 원하는 방식은 미세하게 달랐다. 소속감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적 소통, 신입직원 가이드 등 중요한 생활정보를 공유하는 열린 소통에 대한 니즈도 있었고, 필자의 경우 연구에 대한 토론, 협업의 도구로서 깊이 있는 소통이 필요했다. ETRI를 위한 온라인 소통채널이라는 특명 아래 개발된 푸딩 서비스는 이러한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채팅이라는 수단을 도입했고, 토픽 별로 대화를 분류함으로써 효율성과 대화 참가자 간의 소속감을 더했다.

토픽이 없는 대화의 경우 익명시스템을 도입하여 질문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을 덜어낼 수 있게 하였으며, 해시태그의 사용으로 핵심을 부각시켜 질문의 검색과 응답을 보다 쉽게 하고, 자료공유와 토론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 인식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개발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정식 과제도 아닌, 취미에 가까운 프로젝트인 만큼 푸딩 팀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했고, 이전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일이기에 주변의 눈총도 따가웠다. 푸딩 개발에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서 과제의 연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에, 주로 퇴근 후와 주말을 활용하여 개발해나갔다. 수없이 이뤄진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그동안 개발한 코드를 전부 갈아엎기도 하고, 또 실수로 모든 코드를 날리기도 했다. 설계, 개발, UX, 디자인 모두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기에 시행착오도 많았다.

작년 가을 시작한 푸딩 프로젝트는 어느새 8월 초 첫 런칭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험난한 과정을 견디며 지금까지 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목적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돌이켜본다.

경직되고 분리된 분위기의 연구소를 서비스 하나로 바꾸겠다는 거창한 열망은 없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탓에 먼저 나서지 않았을 뿐, 여전히 소통에 갈증을 느끼는 동료 및 선후배 연구원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서비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축적의 시간'을 쓴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실패에 기반한 경험의 축적이 남들을 앞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역설한다. 푸딩 팀의 열망을 담은 작은 시도가 소통을 통해 모두에게 누적되어 훗날 보다 가치있는 싹을 틔우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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