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필 청주 청북교회 목사
[에세이]

휴가가 절정에 이른 때이다. 이달 말부터 8월 중순 사이에 휴가가 가장 몰리고, 휴가를 계획하고 기다리면서 행복지수가 연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때라고 한다. 그런데 휴가를 마치고 오면 하나 같이 기대와 달리 고생담을 이야기하고, 집이 가장 좋다는 말을 한다. 기대만큼 잘 쉬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휴가가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이거나 고생길이었다는 푸념이겠다. 한자 쉴 휴(休)자를 보면 사람이 나무 곁에 있는 형상이다. 제대로 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모습이다. 메튜 에들런드는 "얼마나 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쉬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진정한 휴식은 회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현대인들은 '휴가'를 통해 바르게 쉬고 회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일상적인 일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일을 하려고 한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하지 못했던 배려를 해야 하고, 많은 시간 운전을 하며, 명승지나 풍광이 좋은 곳을 반드시 방문해야 하고, 방송에 나왔던 유명한 맛집을 찾아가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고서야 일로서의 휴가를 마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휴가 뒤에 진한 아쉬움으로 진짜 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금할 수 없다. 바쁜 일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로 여전히 바쁜 현대인의 단면을 휴가철에 볼 수 있다. 회복이 아니라 더 지치는 휴가철이다.

부목사 시절, 모셨던 담임목사는 부목사들이 너무 바쁘지 않도록 배려하는 조치들을 취해주셨다. 목사가 바쁘면 영적으로 혼탁해지게 되고, 성도들에게 깨끗한 영성을 나눠 줄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여유롭고 한적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성경을 보면 예수도 밀려드는 일로 바쁜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오래 일하고, 많이 일하고, 바쁘게 일한다고 모든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역사는 바쁘게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발전돼 온 것이 아니다. 종교적 목적 때문이었을지는 모르나 사막의 구도자나 영성가들, 즉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그래서 생산성이 전혀 없는 것 같은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 역사도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일이었다.

20세기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현대인을 분석하면서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기분을 '권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의 무의함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권태라고 말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끔찍한 시공간 안에서 시간마저 흐물흐물 녹아내리게 하는 지루함"이 권태라고 설명했다. 만약 하이데거가 말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의미함만 느끼지 않는다면, 그 '지루함'을 느낄 만큼의 권태도 때로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인은 그런 지루함을 허락할 마음이 없다. 특히 휴가철에는 더욱 더. 그러니 쉼으로 회복하는 것이 휴(休)가 아니라 새로운 일이 되고 만다. 휴(休)가 의미하는 대로 나무밑에서, 또는 자연과 벗 삼아 거기에 기대어 회복의 기회를 삼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재충전이 이뤄지고, 창의성이 회복되고, 열정이 솟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다. 조용한 휴식이 자연에 피곤함을 안기지 않는 것은 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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