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황영호 청주시의회 의장

지난 16일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이 밝아 오면서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하늘이라도 뚫린 듯 폭우로 변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무심천으로 향했다. 급격히 불어나는 무심천을 보며 상황이 심각해짐을 직감했다. 정말 한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침수를 알리는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평소 시청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침수로 인해 통행이 불가했고 어렵게 시청에 도착해 재난상황실로 향했다. 모니터로 목격한 청주시는 하복대 지역을 비롯해 흙탕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동료의원들에게 심각한 상황을 문자로 전하고 만반의 대비를 해 줄 것을 요청한 뒤 저지대 지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도시의 도로 곳곳이 침수되고 무심천은 물론 도시의 지천들이 범람 위기에 처하고 있었다.

청주시와 국민안전처에서 쉴 새 없이 비상상황임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전송됐다. 긴급한 조치들을 취한 후 절박한 마음으로 하복대 석남천, 오송 호계리 쪽으로 달려갔다. 호계리에서 마주한 벌판은 물바다로 변해 있었다. 물에 잠긴 벌판 한가운데에 70여 마리의 젖소가 고립됐고 농장주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가 논이고 어디가 하천인지 어느 곳이 축사고 어느 곳이 집인지 알 수 없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119에 전화를 해서 상황의 시급성을 설명했다. 이윽고 달려온 119대원들의 노력으로 사람과 소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청주 공단의 폐수처리장에 문제가 생겼고 석남천의 문제로 인근 아파트 주차장이 물에 잠겨 전기·수도 공급이 중단됐다. 낭성·미원 쪽에서는 상당수의 하천과 도로, 주택이 침수되고 소실됐으며 인명피해까지 속출하고 있었다. 청주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지만 이처럼 짧은 시간에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수많은 피해가 발생한 것은 처음인 듯 싶다.

그날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피해 현장을 오갔다. 자원봉사자들께 수없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피해주민들을 위로하며 기회가 되는 대로 함께 복구활동을 도왔다. 참담한 현실과 상처받은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했고 살아갈 날이 막막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무어라 위로를 해야 할지 아니 위로의 말도 사치라는 것을 알았다. 차마 함께 울 수 없었기에 울컥해지는 마음을 돌아서는 길에 애써 달래봤다.

수마에 할퀸 시민들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새벽잠을 쪼개가며 글을 적다보니 불현듯 ‘이 시대 최고의 보험은 안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진, 태풍, 폭우, 전쟁,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등으로 생태계 파괴가 가져오는 환경재앙은 우리의 행복한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

아인슈타인은 "지구상에 벌이 사라지면 3년 내에 인류도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폭염, 장마, 황사, 미세먼지 등 우리 주변에는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안전에 대한 치밀한 전략과 대안 마련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우리 지역의 지리적, 환경적, 문화적 특성에 맞는 안전 매뉴얼이 필요하다. 행정과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하는 가칭 ‘안전사회위원회’를 만들고 안전에 대한 범시민교육과 지원협력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최첨단시스템을 통한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돼야 한다.

스마트시티와 4차산업이 융합된 청주만의 차별화된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또 다른 재난이 발생할지 모르는 시대에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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