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 전 부여군 부군수
[투데이포럼]

자동차로 충남 금산에 있는 일흔이재를 넘을 때면,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비록 도로가 옛길을 따라 나지 않고 일부 구간이 다른 방향으로 꺾어져 났지만, 이는 지형의 경사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오히려 옛길이 숲에 가려 흔적조차 보이지 않음이 추억을 더 불러일으키는 지도 모르겠다.

일흔이재는 추억이 많이 깃든 재다. 지금도 고갯마루 정상의 나무그늘에서 산들바람 맞으며 땀을 식히던 먼 옛날이 가끔씩 그리워진다. 차가 도로의 정상에 오를 무렵이면 귀가 멍해진다. 금산 지역이 분지라서 그런지 일흔이재가 낮은 것 같지만, 해발로부터는 꽤 높은 지대임을 짐작케 한다. 해발 700m 지대의 공기가 사람 건강에 가장 좋다고 한다.

금산 지역의 공기도 충남에서 제일 맑고 좋다고 했다. 인삼이 재배되고, 맛 좋은 깻잎과 각종 약초가 나는 것도 자연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도로 때문에 사달이 난 모양이다. 어떤 업체에서 일흔이재의 도로정상 부근에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의료폐기물은 인체에 감염의 우려가 있는 위해한 물질이 아닌가. 병·의원, 보건소, 의료기관연구소, 동물병원 등에서 배출되는 인체 또는 동물의 조직이나 장기, 기관, 신체의 일부, 동물의 사체를 비롯해 혈액, 고름 및 혈액생성물 등을 말하는데, 만약 이것들까지 소각한다면 악취가 유발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의료용품, 배양용기, 일회용 주사기, 수은이 든 체온계 등의 폐기물을 소각할 때도 다이옥신이나 중금속이 비산될 것이다. 또 환자에게 사용한 붕대나 거즈, 탈지면, 수술 장갑,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환자에게 사용한 일회용 기저귀, 생리대 같은 것을 소각할 때도 유해 물질과 악취를 유발할 게 뻔하다.

이러한 악취와 다이옥신과 중금속 물질에 오염된 공기는 저지대 마을이나 농경지에 불어들 것이고, 일부는 공기 중을 떠돌다 비나 눈에 섞여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킬 개연성이 높다. 또한 1일 처리 계획량이 48t에 달한다는데, 이 것이 실현되면 폐기물 운반차량이 수시로 들고나는 도로 상이나 인접마을 주민에게 해롭지는 않을까.

금산은 청정지역으로 널리 이름나 있다. 인삼과 약초와 깻잎과 과일도 더 이상 청정지역이 아닌 곳에서 생산된다는 소문이 나면 판로가 막히고, 관련 산업들도 사양길에 접어들지 모른다. 금산군 주민들이 이를 극렬히 반대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주장이고, 정당한 권리라 할 것이다. 사익 추구가 전체 주민의 권익을 침해한다면 이는 배제돼야 마땅하다.

금산군 주민들의 생명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은 보장돼야 한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는 국가만 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민생활과 밀접한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보다 바람직한 것은 금산군이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행정처분은 없을 것이라는 확실한 의사를 표명하는 일이라 하겠다.

이제라도 주민들이 불안감을 떨어내고 일상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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