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김석연 공주대 겸임교수

장맛비가 가뭄으로 갈라진 대지를 아물게 하고 바닥난 저수지에 물을 채워 애타는 민심을 봉합하는 듯 했으나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했던가. 고마운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장맛비는 장대비가 되어 휴일 아침 시간을 어지럽게 흔들어 놓았다. 설마, 설마 하는 사이 충북 전역에 내린 폭우는 봉합한 민심에 많은 상처를 안겨줬다. 특히 청주지역을 포함한 인근 지역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비는 농경지 뿐 아니라 도심에도 유입돼 물바다가 됐다.

속담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는데 약주고 더 큰 병. 정신·물질적으로 매우 고통스런 수해를 안겨줬다. 가옥침수, 정전과 단수, 무너진 비닐하우스, 물에 잠긴 자동차 등 피해 입은 주민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라지만 야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때 원불교 충북교구 봉공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북 자원봉사센터에서 수해 현장에 봉사를 오는데 우리도 함께 하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마침 시간이 있기에 그렇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다음 날 교무님과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약속 장소에 모여 청주시 미원면사무소를 향해 출발했다. 가다보니 토사가 흘러내린 곳, 뿌리가 뽑힌 나무들, 흔적도 없는 양배추 밭, 쓰레기를 감싸고 있는 나뭇가지들, 언론에서 보도된 무너진 다리 등 당시 처참한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복구현장을 배정 받고, 10분정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옥화 6경 금관 유원지였다. 물이 빠지고 난 유원지는 한적하고 경치 좋은 휴양지라기보다는 쓰레기장 같았다. 배정된 N 펜션은 생각보다 훨씬 참담했다. 장화와 고무장갑 등을 지급받고 현장에 들어서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몇 시간 사이,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에게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와 닿았다. 큰 가뭄에는 다소 곡식을 거둘 수 있지만 큰 수해에는 농작물 뿐 아니라 농토까지 유실된다는 옛말이 눈앞에 펼쳐졌다. 게으른 눈은 걱정만 하는데 그래도 부지런한 손이 하나씩 하나씩 치우면서 땀을 흘리니 주변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더위를 달래기 위해 교무님이 건네주는 얼음물을 한 잔 마시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물로 인해 피해를 입고, 그 피해복구를 위해 땀을 흘리고,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한잔 물을 마시는 인간은 물에 얼마나 나약한가?

점심은 미원 초등학교 금관분교에 마련됐다. 참! 좋은 사랑의 밥 차를 운영하는 대전시 서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청주 수해지역 봉사활동을 와서 맛있는 국수를 제공해 줬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더운 날씨에도 땀을 흘리며 국수를 삶는 분, 미소를 잃지 않고 배식을 하면서 맛있게 드시라는 한마디는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운 말이었다.

오후 부서진 전자제품, 가구, 침구, 등을 정리하고 실내에 진흙을 치우는데 양이 너무 많아 치워도, 치워도 계속 나왔다. 40여 명이 힘을 합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때 도지사 사모님께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옥수수, 빵, 음료수 등을 준비해 수해 현장을 찾아오셨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도 힘을 합하니 봉사한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음에 봉사를 잘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피해 주민들이 의욕을 잃지 않고 내일의 푸른 숲을 위해 꿈과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또 다른 기회가 온다고 하지 않는가. 이를 계기로 다시 마음을 추스러 내일을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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