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 대전시 6대 명예시장(안전행정분야)
[시선]

지난달 14일 이른 새벽, 삽시간에 24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불길에 휩싸였다. 아파트를 휘감은 불길은 마치 성냥개비를 쌓은 탑에 불을 붙인 것처럼 거침이 없었고, 화마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육안으로는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 사고로 최소 81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다행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이 화재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영국 런던의 그렌펠타워(Grenfell Tower) 화재다. 이것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의 도시재앙이 우리에게 어떤 아픔을 주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이후, 우리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30층 이상의 고층건축물을 대상으로 한국소방안전협회 등 유관기관과 소방특별조사를 병행하는 합동안전점검을 실시하고 고층건축물 관계자에 대한 소집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소방관서와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왜일까?

그렌펠타워 화재의 피해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대피 지침 오류, 첫 발견자의 미숙한 대응, 저가의 가연성 외장재 사용, 안전시설 부족, 규제 완화 정책 등이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에 대해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화재가 발생한 장소인 4층 집 주인의 초기대응 미숙은 화재 피해가 커진 대표적인 원인 중의 하나로 보인다. 이러한 초기대응 미숙은 평상 시 제대로 된 교육ㆍ훈련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현재 우리나라 소방관계법령에서는 화재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감안해 건축물의 관계인(소유자, 점유자, 관리자) 또는 소방안전관리자 등으로 하여금 상시 근무하거나 거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연 1회 이상 소방훈련과 교육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필자도 아파트에 살지만 단 한 번도 소방훈련과 교육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다. 이유를 듣고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확인해 본 결과, 아파트 거주자의 무관심과 교육·훈련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제재수단이 없어 참여도가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쉽게 애기해 교육훈련에 참가하라고 입주민에게 안내하고 독촉하면 “안하면 어떻게 돼요? 벌금 내요? 안 받을 테니 법대로 해요”라는 것이다.

화재 시 소화기를 이용한 초기소화 및 소방대 신고 등 초기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화재가 발생해 경보가 울리면 그 건물 안의 거주자와 근무자는 사전에 지정된 피난통로를 따라 신속하게 피난하되 질서유지를 통해 혼돈이 없도록 해야 한다. 특히 화재 시의 침착한 피난 질서유지는 평소 훈련을 통해 체득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위해 소방안전관리자 등이 실시하는 소방훈련에 근무자와 거주자가 적극 참여하도록 의무화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소방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과태료 등의 행정조치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그렌펠타워 화재 같은 대형참사가 발생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심은 금물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화재 시 초기대응 방법을 알고 소방교육·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 그렌펠타워 화재가 발생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어섰다. 다른 나라에서의 가슴 아픈 사고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의 안전을 위해 소방 교육·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고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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