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1980년대 처음 프랑스 여행을 떠날 때 항공료를 아껴볼 요량으로 입양아를 현지로 데려가는 에스코트를 맡은 적이 있었다. 입양아 출신의 20대 여성과 함께 유아와 어린이 네 명을 돌보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김포-파리 노선은 알라스카에서 중간기착 했던 관계로 근 스무 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좁은 기내에서 식사와 용변을 도와주고 놀이도 함께하면서 나름 정이 들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리니 프랑스인 양부모들이 인형과 장난감 같은 선물을 한아름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들었는지, 낯선 외국인이 자기를 데려가려하자 본능적인 거부감이었을까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 시간 남짓, 옷자락을 움켜잡은 고사리 손을 겨우 떼어내고 양부모와 입양관계자들에게 인계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더없이 무거웠다. 계속되는 울음소리가 공항 허공에 예리한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 울렸다. 지금도 그때 그 눈망울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프다. 그들도 이제 마흔이 넘었을 텐데 잘 살고 있을까.

숫자는 대폭 줄었다지만 지금도 해외입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해외입양인은 미국 11만 2239명, 다음이 프랑스(1만 1196명)로 초기 해외입양은 정확한 집계와 기록이 미비하여 실상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대기업가로 성장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현지 적응이 어려워 입양 이후 더 불행한 삶을 경험하는 입양인이 많고 특히 미국의 경우 국적취득에 실패하고 범죄에 연루되면 강제추방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낳아 우리가 버린 아이들, 경제성장의 뒷 그늘에서 어쩔 수 없이 그래도 국내보다는 기회가 있겠지하며 외국으로 보냈던 그들에게 이제 관심을 기울일 때가 아닐까. 특히 현지적응을 못하고 돌아온 입양인들이 우리사회에 속히 뿌리내리도록 관심과 배려가 그래서 필요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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