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 충북본사 편집부국장
[데스크칼럼]

그 때는 물이 불어난 무심천을 그냥 건너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지만 80년대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청주 사직동에 살던 본 기자는 무심천을 건너 청주중을 다녔다. 비가 와서 물이 불어도 책가방을 머리에 인 채 가슴까지 오는 무심천을 무서운 지도 모르고 횡단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요즘들어 무심천에서 물에 휩쓸린 사고를 접할때면 늘 예전의 일이 생각나 가슴이 서늘해진다.

청주가 큰 물난리를 겪었다. 지난 16일 청주에는 302.2㎜의 기습 폭우가 쏟아졌다. 1966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1995년 8월 25일(293㎜)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양이다.

시간당 90㎜, 몇 시간동안 300㎜의 폭우로 인해 무심천은 말그대로 범람위기까지 갔고 청주 도심 대부분은 물에 잠겼다. 특히나 피해가 컸던 복대동·비하동 일대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기고 정전·단수가 이어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현재 집계로만 청주·증평 등 시·군에서 사망·실종 등 인명피해 7명, 이재민 202가구(441명) 발생, 도로 침수·유실 44개소, 개인시설 457동(침수 451, 반파 6)·공장 15개소 피해, 농경지 2989㏊(침수 2782㏊·매몰 102㏊·유실 105㏊), 가축 피해 4만 2000마리(시설 5만 1000㎡) 등이다. 아직 집계가 끝나지않은 상태라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폭우로 큰 피해를 본 충북지역 시·군은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청주시와 청주시의회, 충북도의회, 정치권 등은 "인력·장비를 긴급 동원해 응급 복구에 나섰지만,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형편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한 상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피해 지역은 응급대책, 재난구호, 복구에 필요한 행정·재정·금융·의료상 특별 지원을 받게 된다.

워낙 일시에 많은 비가 내려 대책이 없었다고 하지만 대응이 늦었다는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나온다. 복대동 등 지역 주민들은 "도로에 고인 물이 빠지지 않아 주택이 잠기면서 아수라장이 됐는데, 죽천교 수문을 열자 한순간에 물이 빠졌다"며 "청주시의 늑장대응 탓에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날 오전 7시부터 1시간 동안 90㎜의 물폭탄이 떨어졌지만 청주시가 취한 조치는 없었다. 시민들에게 안전에 유의하라는 안내 문자 메시지가 발송된 것은 오전 8시. 109.1㎜의 강수량이 기록되고 난 뒤였다. 이 역시 북이면·오창읍에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됐으니 안전에 주의하라는 휴대전화 문자였다.

이날 청주에서 가장 피해가 심했던 복대동·비하동 일대의 위험성을 알리는 안내문자는 오전 내내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재난방송 역시 오전 10시가 넘어 나갔다. 주택가에 차량이 둥둥 떠다니고 주택·상가마다 물이 들어차는 난리를 겪었지만 청주시는 이런 위급 상황을 전혀 전하지 않았다.

수해 등의 피해가 나면 매번 경험하는 일이지만 우리의 응급대응 매뉴얼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다시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것도 그때 뿐이다. 이번 폭우로 우리들은 소중한 경험을 했다. 정부는 속히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해 특별지원에 나설 일이고, 청주시 등 행정기관은 ‘응급대응 매뉴얼’을 손 볼 일이다. 다시 되풀이되면 안 된다며 국민들을 분노케했던 ‘세월호 사건’이 벌써 3년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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