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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취재2부 차장 email@cctoday.co.kr


등잔불이 바람 앞에 언제 꺼질지 모른 채 나부끼는 모습을 비유한 풍전등화(風前燈火), 달걀을 쌓아 놓은 것과 같다는 의미의 누란지세(累卵之勢), 긴 장대 끝으로 내몰려 선 모습을 나타낸 간두지세(竿頭之勢).

이 사자성어들은 몹시 위태로운 형세를 비유한 말들로, 그야말로 존망이 걸릴 정도로 매우 위급한 상황과 그 처지를 빗대어 나타낸다.

최근 통합 청주시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 사자성어들의 의미와 딱 들어 맞는다. 현장에서 만나는 직원들이 내쉬는 절망적 한숨과 포착되는 시무룩한 표정만으로도 그 연유를 알만하다.

시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길목에서는 늘 각종 사건·사고가 시의 발목을 잡았다. 통합청주시 CI사태부터 제2쓰레기 매립장 특혜의혹, 간부공무원의 대청호 투신까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만만찮은 파장과 무게감을 준 사건은 용암동 단수 사건과 최근 22년만의 홍수사태다. 2015년 8월 발생한 용암동 단수사건은 대응 매뉴얼 부족과 미흡한 후속 대처 등 인재(人災)로 통했다면 최근 홍수 사태는 말 그대로 자연 재해다.

양동이로 쏟아 퍼붓듯 한 시간에 90㎜가 넘게 내리는 폭우에 사람들은 뻥 뚫린 하늘만을 원망했다. 기록적인 폭우에 피해도 역대급이다. 18일 기준 청주지역은 잠정적으로 480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집계됐고 3명의 사망자와 22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질긴 ‘물과의 악연’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통합 이후 첫 비상사태에 처음에는 허둥지둥 했지만 최근 시 공무원들의 대응를 보고 있으면 그 내면엔 ‘참 봉사’가 담겼다.

읍·면·동 직원들을 비롯한 일선 공무원들은 직렬이나 업무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저마다 반바지 차림에 양손에 삽과 양동이를 들고 현장을 내달리고 있다. 식사시간도 별도로 없이 김밥으로 때우거나 군인들이 먹는 짜장면에 한 젓가락 얹기도 한다.

직원들 뿐아니라 이승훈 시장도 쉴틈없이 이리저리 발로 뛰고 있다. 폭우 첫 날부터 직원들보다 현장 구석구석을 더 열심히 다니고 있다. 실제 그는 비상체계임을 감안, 구두 대신 등산화를 신고 출근하고 있다.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과 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한 그에게 시쳇말로 격 떨어지는 모습일 수 있겠지만 상황이 등산화를 신게 했다.

현재 수해복구 현장에서는 공무원과 군·경, 자원봉사자 등 3600여 명이 비온 뒤 더 단단한 청주시를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 모두가 ‘위기 뒤 기회가 찾아온다’는 긍정적 사고로 현장을 찾은 이 시장의 등산화를 바라보며 “힘냅시다”라는 미소섞인 말 한마디를 건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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