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과학포럼]
김철호 ETRI 이동통신RF연구실 선임연구원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은 대개 말이 되지 않는다. 꿈 속 이야기는 뇌에 저장된 기억들이 두서없이 연결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어제 낮에 잠깐 스친 생각이 잊은 줄 알았던 오래된 기억과 엮이기도 하고, 요사이 골똘한 고민거리가 자는 동안 창밖으로 들리는 세찬 빗소리와 이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하찮은 것들이지만 가끔은 중요한 통찰을 가져다 준다.

화학자 멘델레예프는 꿈에서 원자들이 적당하게 배열되는 모습을 본 후 원소주기율표를 만들었고, 비틀즈의 명곡 '예스터데이'의 멜로디는 폴 매카트니의 꿈에서 탄생했으며, 에드거 엘렌 포의 추리소설도 대부분 그의 꿈에서 시작되었다. 뉴턴,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에디슨, 괴테, 모차르트 등 많은 창조적 인물들이 꿈으로부터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하였다. 꿈에서 이루어지는 무작위적 연결이 가진 신비로움이다.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대전에서 승리했을 때, 어떤 이들은 인간이 기계에 패했다는 사실에 낙심했고, 어떤 이들은 인간의 기술이 난공불락이었던 바둑을 점령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에 환호했다.

필자는 알파고가 했던 무작위적 연결에 의한 학습이 승리의 핵심이었다는 데 큰 충격과 흥분을 경험했다. 알파고의 능력이 오히려 알파고를 정해진 길에 따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발휘되었다는 역설 때문이었다. 인간이 꿈에서 무작위적 연결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하듯이, 알파고도 나름의 수준에서 끊임없이 창의적인 과정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술이 인간의 본질을 닮아가면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는 것만큼 우리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의 현장에서 '창의성'이라는 말이 많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을 선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창의적이고자 하는 열망만큼 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인간이 알파고에게 부여한 자율적인 환경만큼이나마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허락하고 있는가. 인간은 꿈에서 뿐만 아니라 산책이나 화장실에 있을 때에도 창조적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산책 중 직립보행이 뇌를 자극한다거나 화장실 암모니아가 뇌를 활성화시킨다는 설명도 있지만, 꿈과 산책, 화장실을 모두 일관하는 공통점은 '방해받지 않는 상태'다. 창의적인 환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방해를 줄이는 일이다. 또한 무작위적인 연결을 통해 발생하는 엉뚱함과 하찮음, 실패 따위에 의해 비난을 듣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창조적 인물들은 그들의 성취보다 훨씬 많은 실패를 경험했고, 거대한 딥 러닝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진화도 무수한 시도와 실패 속에서 그 웅장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의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한정된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한 것이다. 연구원들이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수행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근무시간은 보다 유연해야 하며, 연구원들은 책상 앞의 경직된 모습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개인의 연구 공간은 최대한 방해받지 않도록 꾸미되, 그 이외의 공간은 철저히 대화를 위한 개방적 디자인이 되어 연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 아래에서 연구자들이 비로소 낮에도 꿈을 꿀 수 있을 때, 수많은 실패가 나올 것이고, 그 토양 안에서 놀라운 창조가 꽃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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