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슬라이드뉴스3-충청로.jpg
▲ 사진 = 아이클릭아트 제공.
▶"아, 월급쟁이 못해먹겠다. 나도 장사나 한번 해볼까. 장사하는데 임자가 따로 있나." 직장 스트레스에 찌든 월급쟁이라면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법한 그림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결심이 잔인한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괜찮은 사업 아이템 잡아서 점포만 차리면 '대박'이 날 것 같지만, 현실에 부딪혀보면 '쪽박' 찰 확률이 더 크다. 보통의 사람들은 '사업'에 '돈'을 맞추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돈'에 '사업'을 맞추기 때문이다. 망하는 집(터)은 항상 망하는 이유가 있다. 시장조사는커녕, 앉아서 계산기만 두드리다 뛰어드니 망한다. ‘입’으로 개업하고 ‘눈대중’(感)으로 영업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실패한다. 폐업 자리에 개업하는 사람들의 경우다. 본인이 하면 잘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겁 없이 덤벼드는 건 겁이 없어서가 아니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두려움을 일부러 모른척하기 때문이다.

▶김치킨 씨는 지난해 말 회사를 때려치우고 '닭집'을 차렸다. 상가 보증금 2500만원, 권리금 2500만원, 인테리어와 집기류 3000만원 등 8000만원을 쏟았다. 대출금 5000만원 이자만 한 달에 30만원씩 내고 있다. 생닭, 기름(대두유), 파우더, 포장박스, 무, 콜라, 소스, 소금 담는 비닐, 비닐봉지까지 사야하고 배달비(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한집건너 닭집'일 정도로 치킨게임도 격렬하다. 보통사람들은 모른다. 제빵업자들은 빵 한 조각을 팔기 위해 새벽부터 채비를 한다. 아침 식탁을 채우는 고소한 빵은 눈물로 반죽한 것이다. 설렁탕집(식당)의 국물도 밤새워 불곁을 지켜야 나오는 눈물겨운 육수다. 자영업은 '최후의 보루'가 아니다. 막다른 벼랑 끝에 서서 눈물로 버티는 최후의 밥벌이다.

▶취직하려는 청년, 실직 당한 중년, 퇴직한 장년들이 창업시장으로 뛰어든다. 불나방이다. 480만개의 자영업 사업체에 590만명이 목숨을 걸었다. 이 중 400만곳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직원 없이 혼자서 다 한다. 하지만 10곳 중 7곳은 창업 후 3년 내 문을 닫는다. 매일 3000명이 뛰어들고 2000명이 길바닥에 나앉는 셈이다. 더구나 5명 중 1명은 월 매출이 100만원도 안 된다. 창업과 폐업, 재창업을 반복하는 '회전문 창업' 자영업자도 수두룩하다. 이들이 빌려간 돈은 자그마치 180조원이다. '경제 시한폭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자영업은 서민들의 핏줄이다.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다면 우린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막걸리에 파전 한 조각 입에 담기가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라면집을 차리려고 회사를 그만 둔 적이 있다. '밥 The 라면'이라는 상호명도 정했다. 라면을 먹으면 밥을 공짜로 (더) 주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스스로 작명을 잘했다고 생각했고 '내가 하면 잘할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점포를 빌리고, 집기를 사는 것 외에도 돈 들어갈 데가 너무나 많았다. 자본금 5000만원을 생각했는데 셈을 놓으니 1억원 가까이로 불었다. '파송송 계란 탁' 하면 라면집이 되는 게 아니었다. 절망했고, 바로 접었다. 세상은 무조건 꽃길이 아니다. 잡초가 무성하고, 상처가 가득하다. 자영업의 눈물을 다시 직시한다. 오늘 본 주인의 얼굴은 오늘의 얼굴이 아니라, 새벽부터 일한 어제의 얼굴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