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화 을지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시론]

최근 모 광고에서 어린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스마트폰의 음성기능을 가르쳐 주고 자기가 원하는 인형을 얻어가는 장면을 보았다. 필자에게도 이 모습이 아주 낯설지 않다. 얼마 전, 테스트하던 모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의 버튼 기능을 오히려 필자에게 가르쳐 주던 6살 조카의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의과대학의 강의실도 예외가 아니다. 의과대학은 한정된 시간과 많은 수업량 때문에 토론이나 발표로 진행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필자는 대학 초기에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강의실에서 타자기로 친, OHP 필름의 강의록을 보면서 수업을 받았었다. 강의실은 어두웠고 타자기 글자는 작았으며, 교수님의 목소리까지 잘 안들릴 때는 수업에 집중하기가 참 어려웠다. 복사가게에 남아있던, 정갈하게 정리된 선배들의 노트가 늘 도움이 되었고, 이는 아래한글이 보편화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제는 노트북을 펼쳐 든 학생들이 적당한 조명의 강의실에 빼곡하다. 이제 학생들은 강의자료를 파일로 공유하고 중요한 내용은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앱으로 필기도 한다. 이들은 스마트폰의 사용이 일상적이고 이메일과 인스턴트 메시지가 익숙하며 비디오게임을 즐기면서 성장한 세대이다.

2001년 미국의 교육학자인 마크 프렌스키(Marc Frensky)는 그의 논문에서 1980년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 1990년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확산 속에서 성장기를 보낸 30세 미만의 세대를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가 없는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던 세대이며, 기술적으로는 가장 유창한 디지털 언어를 구사한다. 또한,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디지털 기술을 한꺼번에 다루는데 익숙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는 멀티태스킹도 이전 세대보다 쉽게 할 수 있다. 돈 댑스콧(Don Tapscott)은 이 세대를 다음과 같은 8가지로 특징지었다. 이 세대는 자유를 선호하고, 맞춤화에 익숙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한 감시자이고 성실하고 투명한 기업을 원하고, 일과 교육, 사회생활에서 엔터테인먼트와 놀이를 추구하고 협업과 관계를 중시하고, 스피드를 요구하며 혁신을 주도한다고 하였다.

반면 성인이 된 후, 디지털 문명의 홍수 속에서 디지털 기기를 익혀야만 했던 30대 이상의 기성세대를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라고 한다. 이들은 나름대로 디지털 문화에 적응하지만, 떠밀리는 듯한 강제성과 뭔가 어쩔 수 없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새로운 디지털 문화를 접할 때, 디지털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의 경험과 습관이 먼저 나오게 된다. 카메라로 찍으면 될 것을 메모지와 펜을 먼저 찾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필자 역시도 전혀 다른 세대인 그들에게 맞는 방식보다는 필자가 배웠던 익숙한 방법을 강요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시각화와 비디오게임이 익숙한 학생들에게 수업량이 많다는 핑계로 과거의 수단으로 지식을 전달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쉽지 않더라도 좀 더 다른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원주민과 다른 세대의 관계가 광고에서처럼 늘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갈등하기도 하고, 합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상상 속에나 존재했던 현재를 살고 있다. 모두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 처음인 것이다. 서로가 처음이라서 부족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통의 실마리를 찾아낸다면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고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풍요로운 미래를 같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디지털 원주민이 성숙해지고 있는 지금, 모두가 꿈꾸는 멋진 디지털 신세계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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