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컨텐츠진흥팀장
[에세이]

방안이 온통 책이다. 거실도 책이고 베란다도 책으로 가득하다. 책 냄새를 맡으며 자고 책 냄새를 맡으며 기침을 한다. 아내는 이게 무슨 난리냐며 큰 집으로 이사를 가던지, 갔다 버리던지 하자고 구박한다. 그럴 때마다 책을 버리는 집에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며 책의 숲과 책의 도시와 책의 나라를 만드는 게 내 소원이니 온 가족이 책의 성찬을 즐기자고 회유한다.

세계 각국의 주목받는 도서관들은 부유한 애서가들의 서고에서 시작됐다. 피렌체의 부자 코시모 데 메디치는 산마르코 인근 수도원에 도서관을 건립하고 학자들에게 장서를 공개했다. 카네기는 도서관 건립에 자신의 재산 90%를 기부했다. 미국 전역에 1670여개의 공공도서관이 세워졌고, 세계 각국에 2509개의 도서관을 건립했다. 중국 닝보시의 천일각은 500년 전에 세워진 세계 3대 개인 서재로 드넓은 정원과 고풍스런 건축미에 30만권의 고서가 숨 쉬고 있다.

연필은 지적광산이고 책은 지식의 최전선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과 시대의 영광을 오롯이 담는 행위다.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의 지식과 정보와 지혜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며 새로운 미래를 여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책방과 도서관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출판사 폐업이 속출하고 동네서점은 10년 전보다 38%나 감소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책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종이책이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국의 산골마을 헤이온와이는 책마을 프로젝트로 버려진 마을을 살려냈으며, 이탈리아 베로나는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품화 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서울 한남동의 '북파크'는 과학을 테마로 한 도서관 같은 서점이다. 다락방, 테라스, 응접실 등 취향에 따라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서교동의 '홍대던전'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라이트노벨, 애니메이션, 게임 등 맞춤형 문화공간이다.

아기자기한 책방과 서점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은 서울 출신 부부가 시골의 낡은 집에 책방을 꾸미고 북스테이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남 통영의 '봄날의 책방'은 동네 사람들의 문화사랑방이다. 청주에서는 시민단체와 동네서점이 손을 잡고 '상생충북(Book)'이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동네 출판사와 동네서점, 작은도서관 등이 함께 힘을 모아 지역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서점 내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고 격월로 대표도서를 선정하며 북콘서트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쓴 책 중에 문화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것은 모두 지역의 문화자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초정약수에 대한 다양한 스토리텔링, 충북의 문화자원에 대한 에세이 등이었는데 지역의 문화원형이나 콘텐츠가 한 권의 책이 되고, 서점과 도서관에서 이것들을 읽으며 지적 자양분을 쌓고 다양한 상상력을 키우며, 더 멋진 세상을 가꿀 수 있기에 의미가 깊다. 컴퓨터와 e북 등 디지털 시대에서 따뜻한 감성으로 가득한 책은 여전히 유효하고 가장 멋진 자원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그곳을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책보다 더 낳은 것을 발견할 수 없으니 책을 들자. 새로운 미래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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