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왕철·충남본부 서천담당

'적폐(積弊)'는 요즘 가장 핫(hot)한 단어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뜻하는 이 단어는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단순한 단어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얼마나 많이 쌓이고 쌓였으면 적폐 청산은 열렬한 지지와 함께 이제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이후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 과오를 잊지 않고 있다. 일제부역자를 비롯해 일제가 남겨놓은 잔재들을 정리하지 못하면서 이 잔재들은 적폐로 남았고 그래서 후세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됐다.

적폐의 피해자는 언제나 삶의 무게가 버거운 수많은 민중이다. 그리고 이 적폐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자이거나 기회주의적 처세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이름 아래서도 이 공식은 여전히 통용된다.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에 많은 유권자들이 열광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이유다.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지역사회가 또 시끄럽다. 어김없이 정치권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에 온 동네에 악취가 진동한다. '정치 철새'라는 적폐가 썩어서 나는 냄새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서천군수 출마 예정자들과 서천지역 대의원들이 성명을 냈다. 정치 철새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당 지지도에 따라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에 대한 논란이 또 다시 일어난 거다.

이젠 지겹지도 않을 정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자리 잡은 게 바로 '정치 철새'다. 적폐 중의 적폐인 셈이다. 물론 이 '철새'라는 적폐를 키운 건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무조건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정치풍토와 유권자의 무관심이 상호작용해 정치 철새도 때론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면서 선거철만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도 선거판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했다. 정치 철새들이 아무리 명분을 내세워도 철새 행위 그 자체로 적폐인 이유는 명백하다. 바로 정당정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치 철새가 선거로 자신의 전력을 세탁함으로써 유권자들은 정당정치에 혼란을 겪게 되고 정치의 예측가능성에 있어서도 방향 설정이 힘들어지게 된다. 선거가 유권자의 축제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는 이유다. 또 철새 행위는 일제 부역자의 기회주의적 처세와 맞닿아 있는 만큼 정정당당한 문화를 우리 사회에 꽃피우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촛불정신'이 전부가 아니라는 반론도 많지만 '적폐 청산'은 대중적 지지 속에서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다시는 선거판에서 철새들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이제는 유권자가 제대로 심판하고 청산해야 한다. 정치 철새를 그대로 적폐로 남겨 놓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후세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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