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곡수매가 2% 인하 방침을 발표하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당장 농민들의 거센 반발은 물론 정치권도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1948년 추곡수매제도가 도입된 이래 몇차례 동결된 적은 있어도 인하한 경우는 없어 농민들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더욱 가중될 게 분명하다. 아직 국회동의 과정이 남아 있어 확정되지는 않았다 해도 이번 추곡수매가 인하 방침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정부가 사상 처음 추곡수매가를 인하키로 한 것은 쌀산업을 둘러싼 나라 안팎의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세계무역기구(WTO) 쌀협상이 내년으로 다가옴에 따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개방협상을 앞두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추곡수매가 인하는 더 이상 인위적인 가격지지를 통해서는 쌀생산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지난 50여년간 유지해 온 추곡수매제도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것이다. 쌀 문제는 국내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 좋든 싫든 세계무역기구의 테두리 안에서 활로를 찾아야 할 정도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음을 인식해야 한다.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진행 중인데다 내년부터는 세계무역기구 쌀재협상이 시작된다. 이 경우 현재 국내소비물량의 4%까지 허용하고 있는 외국산 쌀수입 물량을 확대하거나 관세를 물리고 무제한으로 쌀수입을 허용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문제는 국내산 쌀값이 외국 쌀에 비해 4~5배 비싸다는 데 있다. 관세를 대폭 올린다 해도 경쟁력이 떨어져 농가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매가 인하를 통해 단계적으로 쌀값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정부방침은 때늦은 감이 있다.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전부터 쌀시장 개방압력은 계속돼 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보조금과 수입제한으로 버텨와 결국 개방의 충격을 키워온 꼴이 됐다. 일본과 같이 이때부터 차근 차근 준비만 했더라도 오늘과 같은 난관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간의 위기만 모면하려는 정치권과 정부관계자들은 책임을 면키 어렵다.

정부는 쌀시장 개방으로 인한 피해를 농민들에게 모두 떠넘겨서는 안된다. 논농업직불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는 등 농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쌀문제는 단순한 식량자원을 떠나 농민보호 및 식량안보 차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함은 물론이다. 농민들 또한 수매가 인상만 요구할 게 아니라 품질향상과 규모화영농 등 체질 개선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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