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어두운 실내의 '오타쿠'에서 밝은 광장의 '덕후'로 나와야 할 때. 그림=이창희 (재미화가)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 오타쿠(御宅)는 특정 분야에 비상한 열정과 흥미를 갖고 있지만 사회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지칭하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과도하게 몰입하여 놀라운 지식과 정보를 갖추고 관련 상품과 정보를 수집하며 여기에 나름대로의 해석과 의미부여를 즐기는 계층이다. '집'을 의미하는 '타쿠'라는 단어 자체에 집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는 뉘앙스가 담겼듯이 그렇게 취미생활을 즐기는 동안 사회와 고립되고 대인관계와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그다지 호감을 주지 못하였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부터 오타쿠 문화는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코스프레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이나 만화의 주인공, 피규어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취향과 몰입을 드러내곤 했다.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시간이 흘러 '덕후'가 되면서 우리 대중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자신을 덕후라 칭하며 같은 취향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덕후라 부르는 사이 덕질, 입덕, 성덕 그리고 덕밍아웃 같은 조어들이 통용되고 있다.

일본 오타쿠 취향이 폐쇄, 은둔, 고립 등의 개념을 내포했다면 우리는 소통과 공유, 교류 그리고 외연이라는 차별적인 개성을 더욱 강화했으면 한다. 서로의 경험과 느낌을 함께 나누며 삶의 즐거움을 향유한다면 덕후문화의 발전가능성은 매우 긍정적이다. 아직 일본 오타쿠와 거의 동일한 성향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 한국화되고 우리 정서에 부합하는 마니아 문화를 조성할 때가 된 듯 싶다. 예전부터 특정 물품 수집에 몰두하거나 대중의 시선이 크게 쏠리지 않는, 그래서 관심이 비껴가는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이른바 재야 전문가가 적지 않았는데 이런 취향이 여러 사회여건과 결합하여 덕후문화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덕후가 일본어에서 유래한 조어라기보다 다양한 분야에 내공과 덕을 두텁게 쌓아가며 나눔과 소통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우리말 '덕후(德厚)'로 규정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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