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도움되자 생각 자원입대
금성지구전투 총알 7발 맞아
극적으로 살아 … 마지막 전투
전쟁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
국가안보의 의미 알지 못해

“강원도 철원군 금성지구의 전투가 마지막이었지. 그때 중공군의 총알을 7발이나 맞았는데, 극적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전투는 더 이상 할 수 없었어.”

6·25전쟁이 발발한 지 67년이 지났지만 신재순(88·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할아버지는 전쟁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전 신 할아버지는 당시 호국군으로 있었다. 호국군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부터 1949년 8월까지의 기간에 국군의 예비병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던 예비군이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부터 조만간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은 신 할아버지는 '나라에 도움이 되자'라는 생각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당일이 기억난다”며 “휴일이라 모두가 여유를 갖고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이 울렸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사단장 지휘근무병이 급하게 와서 ‘북한의 침공으로 38선 일대가 초토화됐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갑자기 발발한 전쟁 통에 제대로 된 지원과 보급품 없이 군용트럭에 몸을 맡기고, 전투지역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동족상잔으로 얼룩진 전장에 수십차례 투입됐다.

연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어느덧 충주까지 후퇴했을 때, 그는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봤다고 말했다. “당시 충주 달래강은 북한군과 남한군의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이 있었다. 남한군, 북한군 구분 없이 시체들이 강에 떠 있으며 강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미국군의 개입으로 전투상황은 역전됐고 어느덧 철원 금성지구까지 올라간 신 할아버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1952년 10월 12일 고지 아래, 중공군과의 국지전에서 그는 중공군의 총알에 맞아 군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결국 부상으로 제대할 수 밖에 없었다.

치료를 받던 신 할아버지는 1953년 7월 27일 한국 휴전협정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나 그는 ‘국가유공자 7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이 국가 안보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현재도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기에 안보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다시는 한반도에서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눠서도 안 되고 총소리 역시 발생하는 비극적인 일은 막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진재석 기자 luc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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