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변평섭 전 세종시정무부시장

지난 5월 15일, 홀연히 세상을 떠나신 유림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리 지역의 큰 어른이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 분의 떠난 빈 자리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회장님을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지금은 대전시에 편입되었지만 대덕군 동면 추동리에서 대전중학교까지 삼사십리 산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우등생을 놓치지 않았고, 6·25전란 중에는 군인의 몸으로, 그리고 전역 후에는 계룡건설을 일으켰다던지, 재선 국회의원으로 정치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입지'의 인물입니다. 물론 회장님의 이와 같은 인생 역정은 개인적인 성공 신화에 끝나지 않고, 향토 사랑과 애국심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어렵게 지방에서 기업을 성공시키면 중앙으로 진출합니다. 그러나 회장님은 끝까지 지역에 머물면서 전국 무대에 오르는 기업경영 실력을 발휘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의 전무후무한 대형 기름 유출사고로 세계가 놀라고 전 국민이 실망하고 있을 때, 사비를 들여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을 초청해 구제방책을 모색하는가 하면, 추운 겨울바다 바람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룡그룹 임직원들과 함께 손수 기름걸레를 들고 봉사활동을 전개하신 것도 '향토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태안군은 회장님께 '명예 태안군민'으로 추대했는데, 지금도 그 추대패를 받으시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회장님의 향토사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희수를 맞아 유성 갑천변 2만여평에 100억이라는 거액의 사재를 투입, 유림공원을 조성하여 대전시에 기증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종류의 수목이 울창하게 성장하고, 꽃과 새들의 낙원이 되어 많은 시민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것을 보면 더욱 회장님의 깊은 뜻이 느껴집니다.

물론 계룡장학재단의 설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1만4100여명이 혜택을 입었고 수혜금액만도 54억5000여만원이나 되니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장학 사업이었습니다. 장학재단은 영재육성 외에도 일본에 숨어있는 백제문화재 찾기, 중국 심양에 직접 달려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 처형당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기리는 삼학사비를 복원시킨 것 등 문화사업도 전개하였습니다.

회장님의 이처럼 강한 향토사랑은 그것이 곧 나라사랑의 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충청지방을 기반으로 한 자민련 부총재까지 하며 두 번에 걸쳐 국회에 진출해 낙후된 지역 발전을 위해 활약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독도 땅 밟기 행사도 주관하셨고, 독도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생활비도 보내시는 등 독도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보이셨습니다.

생각하면 회장님과 보냈던 세월이 너무 아쉽기만 합니다. 일본과 중국, 우리 역사의 발자취를 찾는 역사탐방 때마다 함께 했던 추억, 몽고에서는 그 넓은 초원에서 맞이한 비바람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던 일, 돌아가시기 며칠 전만 해도 나에게 일본 갈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어찌도 이렇게 눈을 감으셨는지…. 늘 독서와 신문을 가까이 하시고, 특히 국가안보문제에 대해서는 직접 언론에 탁월한 식견의 칼럼을 게재하신 회장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유림 이인구 회장님! 정말 회장님이 그립습니다. 회장님과 잘 다니던 식당엘 가면 종업원들이 "회장님은 어디 가셨어요?"하고 묻는데, 그럴 때 나는 갑자기 쓸쓸해집니다. 회장님 하관 때 흙을 뿌리는 내 손이 떨리고 먹먹했던 가슴-이제 두 손 모아 기도로 이어집니다.

이인구 회장님!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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