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손병관 청주의료원장

수일 전에 문자를 받았다. 전 근무지에서 병원 행사로 알고 지내던 분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의 어부인은 그 병원에 수간호사, 간호팀장으로 필자와 함께 근무했고, 기독인들의 모임을 통해서도 가깝게 지냈던 분이다.

그 팀장이 6월말로 정년퇴임을 하는데 남편으로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퇴임식에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며 축하 동영상을 부탁하는 문자였다.

그 부부는 물론 자녀들과도 알고 지냈고 또 그 간호사의 성실성과 그 병원에 기여한 공을 생각해 기쁜 마음으로 해 드리겠다고 했다. 영광스런 정년퇴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하고는 섭섭한 마음도 클 것이라고 했다. 병원을 위해 쏟은 사랑과 정성이 너무 크고, 병원 구석구석에 쌓여있을 사연들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송공(頌功)이 과장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런 반면 내려놓음의 기쁨을 느끼라시고도 했다. 관절염의 고통 속에서도 병원의 온갖 짓궂은 일, 신경 쓰이는 모든 일에 몸 사리지 않았던 그 무게를 내려놓음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을 이제 누리시라고 했다.

우리 의료원도 역사가 108년이나 되고 근무자가 650명을 넘다 보니 해마다 정년퇴임하시는 분이 다섯 내지 여섯 분이 된다. 대부분의 퇴직자는 근무기간이 30년을 넘는데 금년 퇴직자 중에는 38년이나 근무하신 분도 계신다. 흔히 하는 표현대로 청춘을, 아니 인생을 우리 의료원에 바친 셈이다.

그 노하우가 아까운 면도 있다. 퇴임식은 정성을 다하여 그분들의 공을 기리는 행사가 되도록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년퇴임의 중요성을 이해하면서도 퇴직자들이 사양하기도 하고 또 의료원에서도 덜 적극적이어서 행사에 소홀한 면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서로 이해하며 성황리에 축하의 자리가 만들어진다.

물론 가족들도 초청하는데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어색해서, 아니면 겸손하셔서 초청을 사양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제는 기꺼이 많이 함께 해 주신다. 식이 끝나면 직원들이 복도 양쪽에 도열해 석별의 정을 나누는 데, 큰 박수 속에 서로 악수도 하고 보듬기도 하며 웃기도 하고 눈물도 짓는 그 헤어짐의 자리는 진정 정 나눔의 범벅이 된다.

그런 정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또 가지고 가시라고 해마다 4월 식목 행사에서는 그해 퇴직하시는 분들의 이름으로 기념식수를 한다. 모든 직원들이 함께 그 분들의 공을 기리는 의미도 있고 떠나는 분들도 이곳을 잊지 말고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달라는 의미를 담는 행사이기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그 분들의 삽질에 박수를 보낸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의료원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는 그 나무들과 그 밑에 놓여 있는 퇴직한 분들의 이름을 되새기며 그분들을 생각할 것이고, 퇴직하신 분들은 이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한 번쯤은 그 나무를 찾고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올해도 그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그동안 우리 의료원에 쏟으신 사랑, 그리고 애씀에 감사를 드렸다. 얼마나 힘든 일, 속상한 일들이 많으셨을까? 그러나 그런 말씀은 한 마디도 안 하신다. 다만 '고맙고, 청주의료원이 더 발전하기를 바라며, 그 일에 적은 힘이나마 계속 보태겠다'는 말씀을 항상 듣는다.

떠나는 분들의 '바람'이 담겨진 그 말씀을 들으며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퇴직자 중 한 분은 건강 때문에 요양 중이라 함께 하지 못했다. 모든 직원들과 함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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