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우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투데이춘추]

이상설 선생(1870~1917)은 민족의 독립운동가시며 우리나라 근대 수학교육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04년 일제가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자 그 부당성과 침략성을 들어 반대 상소문을 올리고 ‘대한협동회’를 조직하여 전국적인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1906년 북간도 용정에 ‘서전서숙’을 세워 처음으로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함은 물론 몸소 그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줬다.

지난, 4월 생가지 진천에서 순국 제100주기 추모행사를 성황리에 마치고 최근, KBS 다큐멘터리 제작과 추모 전국학술대회를 앞두고 ‘숭렬전’ 승격 범국민운동과 한흥동 유적지 기념비 건립을 추진하면서 선생의 역정과 발자취를 되새기며 진정 민족, 나라사랑정신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흥동’ 유적지는 한적한 시골길 미류나무 숲과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 뿐이었다. 한흥동 독립운동기지 자리는 눈속에 갇혀 아무 기척도 없었지만, 6월 초 방문에는 파란 새싹이 물감처럼 묻어났다. 꼭, 108년 전 그 세월을 누구도 관심이 없는 그 들판 한 가운데 전설로 남겨졌던 한흥동 유적지는 맹고군 밀산시 전 부시장의 한국방문으로 중국 정부 승인과 부지사용 승낙이 먼저, 해결되면서 송기섭 진천군수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의 추진으로 여기 그 제막식을 앞두고 있음은 천우신조가 분명하다.

이 기념비는 선생 순국 제100주년을 맞아 8만 여 진천군민과 선생의 뜻과 정신을 널리 현창코자 하는 전 국민의 여망을 담아 북으로 봉밀산과 남으로 흥개호를 사이에 두고 일제강점기 민족 최초의 항일무장투쟁운동기지에 선생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우고 후세에 그 의표를 더욱 반듯하게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 간 선생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소홀하여 늘 죄송했지만 이제, 그 첫 번째 작업으로 8.2m 길이에 2m 높이의 대형 화강암 통석에 선생의 이름을 새기고 다음은 만주, 연해주 일대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의 다큐멘터리 제작과 역사기록화 작업이 다음에 해야 할 일이다. 기념비 건립으로 시상설 선생 정신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과 의지는 재고되어야 한다.

100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밥먹는 것도 호사다. 여전히 한반도를 둘러싼 민족의 외우내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상황이 그 때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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