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엽기적인 그녀', '7일의 왕비'…시청률·반향은 낮아
빈틈 많은 이야기…배우들의 멜로 조화도 약해

좌상대감 고명딸이 저잣거리에서 노닐다가 홀로 암행 나온 연산군도 만나고 그의 이복동생(훗날 중종)도 만난다. (KBS 2TV '7일의 왕비')

왕의 하나밖에 없는 딸인 공주도 날이면 날마다 궁궐 담을 뛰어넘어 주막도 가고 풍등축제도 다닌다. (SBS TV '엽기적인 그녀')

심지어 왕은 자신의 대역에게 가면을 씌운 뒤 왕좌에 앉혀놓고는 보부상 두령으로 팔도를 떠돌아다닌다. (MBC TV '군주 - 가면의 주인')

지상파 3사가 나란히 로맨스 사극을 내놓으면서 모처럼 사극 3파전이 붙었다.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등 히트한 로맨스 사극의 바통을 이으려고 기획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성적과 반향이 '고만고만'하다. 시청률은 10% 전후에 머물고 있고, 반향도 크지 않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고운 한복을 입고 나와 '안구정화'는 된다. 그러나 이들 세 작품은 빈틈이 많거나,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로 힘이 달리는 모습이다. 배우들의 화면 장악력이나 조화도 아쉽다.

◇ '연애'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왕·왕세자·공주

외계인에 도깨비까지 등장하는 드라마 세상에 이들과 대적할 인간계 선수 중 최고는 역시 절대권력을 가진 왕족일 것이다. 왕족, 특히 왕세자를 내세운 팩션 사극이 잇따라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

현재 방송 3사가 내놓은 팩션 사극도 모두 왕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왕좌'를 놓고 이복형제, 간신, 악의 무리 등과 싸우게 된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근간은 로맨스다. 저마다 피 흘리는 '왕좌의 게임'이 구색을 갖춰 펼쳐지고는 있지만, 시청률 사냥을 위해서는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운다. 역사적 사실을 조금 가져왔다고 해도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 왕족의 로맨스에 초점이 모아진다.

왕족이 자유연애를 하려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해를 품은 달'이나 '구르미 그린 달빛'은 왕족의 연애 상대가 궁 안으로 들어온 경우. 그러나 현재 방송 중인 '군주' '엽기적인 그녀' '7일의 왕비'는 모두 왕족이 구중궁궐을 벗어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 드라마 모두 주인공들이 궁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궁 밖에서 운명적인 연인을 만나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세상 밖으로 나온 왕족의 활동 거리는 넓어지고, 덕분에 다양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흩어지고 있다. 연산군과 중종, 단경왕후라는 실존 인물을 내세운 '7일의 왕비'조차 허무맹랑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고, '군주'에서는 왕세자를 거쳐 이제는 왕이 된 주인공이 너무 쉽게 목숨이 걸린 일에 끼어들어 맥빠지게 한다. '엽기적인 그녀'는 대놓고 웃자고 만든 드라마지만, 온갖 '개그'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이마저도 이미 '화랑' 등에서 본 것이다.

◇ 사실과 허구 사이 어정쩡…"슈퍼 픽션으로 가야"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멋진 한복차림으로 '어여쁨'을 뽐내고 있고, 이들이 펼치는 로맨스는 어김없이 감정이입을 이끈다. 하지만 스토리가 받쳐주지 않으면서 로맨스도 더는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배우들끼리의 멜로 화학작용 자체도 썩 매끄럽지 못하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지난해 9~10월 시청률 20%를 넘어서며 '박보검 신드롬'을 일으켰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세 사극의 성적은 초라하다. '군주'가 11~13%로 그나마 10%를 넘어서고 있고, '엽기적인 그녀'가 7~10%, '7일의 왕비'는 6%대에 시청률이 머물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의 짜깁기', '닥치고 애틋한 멜로만 강조한다' 등의 지적이 나온다.

KBS TV본부장 출신인 이응진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18일 "지금의 드라마는 말 그대로 픽션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리티, 다큐적인 접근으로 승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의 나아갈 방향은 어중간한 픽션적 요소가 아니다. 특히 사극은 정통 사극이거나 슈퍼 픽션 사극이어야 할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현재 방송 중인 세 작품은 모두 큰 흐름을 역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내가 이럴려고 유모가 됐나 싶고", '변태색정광' 등과 같은 대사는 발칙하고, 목숨을 앗아가는 '짐꽃환'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세 편 모두 사실과 허구 사이, 사극의 울타리와 트렌디한 감성 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느라 빈틈을 많이 노출하고 있고, 완벽한 픽션의 재미도 놓치고 있다.

너도나도 로맨스 사극에 뛰어들 게 아니라 정통사극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교수는 "시대적 상황으로 보더라도 지금은 역사 바로 세우기가 키워드"라며 "지금이야말로 '정도전' '불멸의 이순신' 같은 정통사극이 더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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