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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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노무현은 골초였다. 여사님 성화에 못 이겨 담배를 끊었다고 공언했지만 끝내 끊지 못했다. 대통령시절, 문재인 혹은 부속실 직원에게 담배 한 개비를 빌리기도 했고, 참모와 몰래 화장실에서 끽연하기도 했다. 그는 눈높이가 낮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높이를 잘 맞췄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는 주민들과 하천을 청소하고 나무를 함께 심었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탔고, 정치담론보다 오리농법을 얘기했다. 주민들과 항상 같은 높이에서 있었다. 문재인은 민초였다. 청와대 수석 이후 그는 경남 양산에서 농사꾼으로 살았다. 책 보는 시간 빼고는 봄부터 가을까지 밭을 일궜다. 고추, 상추, 방울토마토, 부추, 쑥갓, 고구마와 깻잎의 생장점을 익혔다. 그래서 그가 가꾸는 김장 채소는 언제나 풍작이었다. 농사꾼의 깊이를 알았던 것이다.

▶이들을 이해하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 그리고 대통령 문재인과 인간 문재인…. 두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무엇인진 모르지만 자꾸 절룩거렸다. 이들은 마치 한곳만 응시하는 것 같았다. 세상을 향한 분노, 아니면 세상을 위한 평화,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야생(野生). 이들에 대한 편견은 이념일 수도 있고, 색깔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혹은 야생마 같고, 또 한사람은 잘 정제된 보석 혹은 경주마 같다. 전혀 이질적인 두사람이 엮어낸 역정(歷程)은 대한민국의 높이와 깊이다.

▶인간이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2초에 불과하다. 그 이후는 기억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그런데 인류는 기억하는 법만큼이나 망각하는 법을 익혀왔다.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불필요한 기억들. 잊고 싶은데 잊지 못하는 것도 무서운 고통이다. 기억과 망각은 서로 버티어 싸우는 길항(拮抗)이다. 너무 빨리 지워버려도, 너무 오래도록 기억해도 문제이니 기억과 망각은 서로에게 화살을 쏘고 있다. 인간이 진화와 번식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기억하기보다, 지워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망각은 병이 아니라 치유다. 적당히 잊을 수 있을 때 생살이 돋아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때 기억이 나고, 기억하고 싶을 때 기억나지 않는 것도 병이다. 너무 빨리 잊고 너무 깊게 기억하는 것 또한 병이다.

▶사실에 기억이 더해졌을 때 진실이 된다. 반대로 진실이 기억을 잃었을 땐 현실이 된다. 우리가 노무현과 문재인을 재론하는 건 기억 쪽에 가깝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결핍이다. 부족했기에 비로소 채워졌다. 그 결핍이 국민의 정서다. 우린 결핍이 싫어 결핍을 선택했다. 삶의 부피는 줄었어도 꿈의 크기는 줄일 수 없듯이 살짝 '등'(등짝)을 기댄 것이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유는 우리의 결핍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미완의 시대, 제발 기억과 망각 속에서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가 있기에 반성이 있고, 망각이 있기에 현실이 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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