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화요글밭]

교육은 농부가 하는 일, 곧 농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옛날부터 교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할 때 흔히 농사일에 빗대어 설명해왔다. 교육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얻을 수 없다. 마치 농부가 계절의 변화 속에서 열매를 거두는 것처럼 교육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기다림은 필수다.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고 부르든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이라고 부르든 사람을 강제로 변모시키기는 어렵다. 농부가 모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잡아당겨서 크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교육이나 농사는 생명체가 본디 가지고 있는 가능성, 성장의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한다. 작물이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고 물을 잡아 주는 것처럼, 학생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인간적·물질적 환경을 갖추는 데 애쓴다.

물론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생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에 두고 있다. 나락 한 톨에는 농부의 땀방울 서 말이 담겨 있고, 벼는 날마다 찾아오는 농부의 발소리에 고개를 숙인다. 가르치는 자의 교육적 사랑은 제자의 인격적 성장과 발전으로 보답 받는다.

지난 3월 처음으로 문을 연 은여울중학교에 대한 언론 보도가 주목을 끌었다. 이 학교는 충북 최초의 공립 대안학교다. 학교 폭력 등으로 인한 부적응학생을 집중적으로 돌보며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학교가 개교한지 불과 세 달 동안 학교폭력 신고가 빈발해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것이 언론의 지적이었다. 경찰 112 상황실에 공식 집계된 신고는 2건이지만 관할 지구대나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에게 직접 신고한 것까지 포함하면 20회에 달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사실을 체크하였고, 사실에 기반해 학교의 현 상황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전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잘못을 범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특성과 성장 배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 심성과 행동이 변화하는 데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 단기 위탁기관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학교로써 기반을 닦아가는 점 등을 두루 살펴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학교에서 일부 문제에 착목하기보다는 희망의 양상을 읽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래의 아들을 위해 끊겠다"며 학생들이 금연선언을 하는가 하면 3학년 선배가 후배에게 '공동체 철학'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고, 학생들이 야간 도서관 개방을 요구하는가 하면 2박 3일 코스 지리산 등반을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마무리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계셔서 우리가 '학교밖 문제아'가 아닌 '학교 안 학생'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좋은 학교가 있을 수 있나. 잘못 많은 나도 받아주는 학교. 나를 용서하고 변화시켜주고 기다려주는 은여울. 하나뿐인 인생 은여울에서 행복하게 지내자". 이런 유형의 학생 글들이 자연스럽게 SNS에 올라온다.

심지어 학교 공동체 총회에서 언론의 비판 보도를 접하고는 '이번 주의 생활철학'으로 "나는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를 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교육적인 기다림과 믿음 속에서 학생들이 건강한 변화를 성취하고 있으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무엇보다도 학생·교직원·학부모의 교육적 관계가 든든하다는 점에서 은여울중학교의 미래는 밝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조약돌 요동치고 깨어지며 만들어내는 은여울처럼 아름답게 흐를 수 있어. 힘차게 흐를 수 있어"(교가 일부). 희망의 언어를 노래하는 학교 공동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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