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고 이범선 작가의 소설 '오발탄'을 다시 읽었다. 대학시절 교양국어 담당교수였던 이범선 선생에게서 배웠던 작품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접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1961년 유현목 감독이 만든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윤일봉 주연의 영화 '오발탄'을 잇따라 봤다. 그동안 서너 차례 관람한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소설 독서 직후라 또 다른 느낌이었다. 보관된 원본이 없어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했던 필름을 어렵사리 구하여 복원한 것이라는데 보존상태가 불량하여 디지털 첨단기술을 동원했다고는 하나 일정부분 쇠락한 필름을 감수해야 했다. 자금난 등 영화제작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지만 개봉되고 나서 곧바로 5·16 쿠데타가 일어나 상영금지처분을 받은 비운의 영화였다.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나서 1963년에야 다시 극장에 올릴 수 있었던 굴곡진 이력은 당시 우리 영화계, 문화계의 열악한 현실을 상징한다.

어두운 폐쇄 공간, 줄곧 이어지는 둔탁한 음향, 등장인물들의 우울한 표정,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주인공 어머니의 "가자"라는 의미 모를 외침 그리고 참담한 결말 등 1950년대 전쟁 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네오 리얼리즘 기법으로 가차 없이 비쳐준다. 특히 장애인 복지문제, 그 시절에는 참전 상이용사가 위주였다. 그리고 빈부격차, 갑질의 횡포, 극심한 이념 갈등 같은 당시 우리사회의 현안이 주인공 철호-영호 형제 가족 구성원의 비극적 운명의 행로를 좇아가며 조명된다. 데자 뷔, 어디서 겪은 것 같은 기시감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60년을 훌쩍 지나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채 그냥저냥 떠안고 있는 과제는 여전히 비슷한가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나서 심신이 정화되고 뿌듯한 행복감을 느끼면 좋겠지만 '오발탄'에서는 이제부터 우리사회가 본격적으로 해소해야할 참으로 해묵은 숙제를 다시 확인시켜 주는 듯 여러 생각이 오갔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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