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심형식 충북본사 취재2부장

순우리말 얌체의 어원이기도 한 염치(廉恥)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얼마 전 ‘염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청주시 의원이 필리핀으로 골프 여행을 다녀왔다. 그가 청주시로부터 특혜를 받았다고 의회에서 맹렬히 비난했던 업체 관계자와 함께였다. 자신이 여행경비를 냈고 업체의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누가 봐도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비상식적인 행동은 이어졌다.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해 음모론을 제기했다. 청주시와 해당 업체가 공모해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음모론이 사실인지 아닌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부적절한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으면 함정에 빠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치단체와 의회를 출입하다 보면 종종 제보가 들어온다. 대부분 제보는 의원들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이뤄진다. 제보자는 지역구가 겹치거나 의정활동에서 갈등을 빚은 동료 의원인 경우가 많다. 그에 대한 제보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특이하게 그에 대한 제보는 공무원에게서 들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공무원들에게 제보가 많은지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청주시 과장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과장이 전화를 받은 후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그에게 전화가 왔는데 다짜고짜 반말하며 고압적 자세로 자료를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퇴직이 그리 멀지 않은 과장이었다. 통상 의원들은 지역구 읍·면·동 직원들에게는 친절하기 마련인데 그가 지역구 읍사무소 직원들을 윽박질렀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한다. 그는 옛 청원군에서 대표적인 권력집단인 이장단협의회장을 역임했었다.

실제 기사로 나간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가 청원군의원이던 시절 한 농협의 사업비를 절반 가까이 삭감시키려 한다는 제보가 있었다. 그는 해당 농협 조합장에 출마했다가 낙마한 후 지방선거에 출마해 군의원이 됐다. 자신과 경쟁했던 후보가 조합장이 돼 사업을 추진하자 군의원의 권한으로 예산을 삭감하려 한 것이다. 보복성 예산삭감이라는 기사가 나가자 사업비는 제자리를 찾았다. 그가 재량사업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제보도 있었지만 사실 확인이 안 돼 기사화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청주시 의원이 된 후에도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시민의 선택을 받고 시민들을 대신해 시정을 감시·견제해야 할 시의원에 당선됐음에도 임기 중간에 시의원을 그만두고 농협 조합장에 출마하려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이를 접기도 했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기자들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다. 아주 친밀하지는 않더라도 기자에게 예의는 깍듯하게 차린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가 한 동료 의원에게 ‘왜 기자들이 자기에 관한 기사는 부정적으로 쓰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은 기자들에게 잘 하는데 왜 기자들은 자기를 안 좋게 보는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오늘 이 글이 답이 될지 모르겠다. 의원에 대한 평가는 그의 평소 행동, 의정활동의 진실성과 성실성을 보고 이뤄진다.

나이 어린 기자가 연로한 의원에게 ‘염치’ 없음을 논하기엔 ‘염치’가 걸려 의원의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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