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권택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박사

마른장마다. 그것도 벼 모내기 때인데 농부들의 가슴도 타 들어가고 있다. 벼는 원래 동남아시아 습지가 고향이다. 그러다 보니 벼는 물을 많이 먹고 자라는데 익숙하다. 한 가족의 밥상에 오르는 쌀을 생산하는 데 대략 2.5t의 물이 필요하다. 쌀은 세계 100여 개국의 13억 인구가 먹고 있는 주요 식량이기에, 논에 가뭄이 오면 인류의 먹거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벼가 가뭄을 만나면 큰 피해가 발생한다. 국제미작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가뭄으로 벼 수량이 30~50%로 감소한다. 가뭄은 세계적인 문제이며, 호주에서는 가뭄으로 벼 생산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몇 주 전에 만난 미국 국립벼연구소 소장은 물 부족으로 인한 벼 생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금년 우리나라에서도 비가 곧 오지 않으면 가뭄으로 큰 피해가 예상된다.

며칠 가물어 논바닥이 갈라지면 어린 벼는 생장에 큰 장해를 입는다. 특히 장애의 정도가 심각한 때는 모내기 전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땅 속 뿌리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지상부의 줄기와 잎은 물 부족으로 더 이상 성장을 할 수 없게 되고, 더 심하면 말라 비틀어 죽게 된다. 가뭄시기에 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을 찾아 공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저수지의 물은 말라가고 있는 데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다. 다른 방법은 벼가 가뭄을 만났을 때 견디어 내는 성질을 갖춘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은 10년 이상 오래 걸리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그 유용성은 대단하다.

벼가 가뭄을 만나면 일단은 새로운 강한 뿌리를 내려 흙에서 보다 많은 물을 흡수하는 경우가 있다. 열악한 가뭄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회피 메카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뿌리에서 흡수된 물 사용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다. 동일한 양의 물을 가지고 더 성장하는 성질을 찾아야 한다. 이를 물이용효율성이라고 한다. 물이용효율성이 높은 유전자를 찾아서 이용하면 어느 정도 가뭄에 견디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 밀에서 이미 이런 성질 가진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여 이용하고 있다.

벼는 생체 내 물이 부족하면 잎에 있는 숨구멍인 기공을 닫아버린다. 물이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저장되어 사용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다. 거기다 잎을 말아서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은 가뭄 지역에 적응하면서 사는 벼의 자원에서 발견되는 특성들이다. 이들 특성을 새로운 품종 개발에 활용하면 가뭄 저항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가뭄은 인류의 농업생산에서 가장 큰 도전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인류의 식량생산에 가뭄은 극복하여야 할 대상이다. 김제의 벽골제처럼 수리시설을 잘 갖추기도 하여야 하지만, 벼가 가뭄을 만났을 때 반응하며 저항하는 생리적 기작과 유전적 기반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에서도 가뭄 극복의 길을 적극 찾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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