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연중 기획] 사람 속으로
청주 ‘신선주’ 제조
아버지 무리한 양조장 확대
재산 강제경매 … 가세 기울어
본래 건축디자인사무소 운영
반대 무릅쓰고 술 빚기 도전
양주만 고급 술 편견 깨고파

"양주와 상업주에 밀린 전통주들이 세상에서 빛을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주류 제조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명맥을 잇는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있어 화제다.

충북 무형문화재 제4호인 청주 신선주 제18대 전수자인 박준미(50·여) 씨는 박남희(83·충북 무형문화재 제4호) 씨의 2남 7녀 중 여섯 째로 태어났다.

박 씨는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청주시 미원면 계원리에서 부족할 것 없는 제일 가는 부잣집의 딸로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 박 씨가 1994년 충북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많은 사람들이 상업화하자는 유혹에 넘어가 무리한 양조장 확대를 시도하면서 불운이 찾아왔다. 모든 가사가 경매에 넘어가는 불상사로 이어진 것.

이후 제조시설도 다 잃어 신선주 제조가 한동안 중단되기도 했다. 모든 재산이 강제 경매로 넘어갈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는 경매로 넘어간 양조장을 찾아 항아리들을 수거해 왔다. 이후 박 씨의 가족들에게는 신선주에 관한 모든 얘기가 금지된 것이 불문율이 됐다.

그녀는 본래 건축디자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어 신선주 제조비법을 전수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각종 행사에 초청받았음에도 재료비가 없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노부모를 보고 어렵사리 전수를 결심했다. 형제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생업을 뒤로 한 채 비법 전수에 열을 올렸다.

박 씨는 "제조에 30일 가량 소요되며 모두 수제작으로만 이뤄지는 데다, 제조수량도 적다는 사실에 처음엔 적응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며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후 어머니가 타계하면서 '명맥을 이어달라'는 유언에 신선주를 전국에 알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통방식으로 술을 빚는 곳을 찾아 전국을 누비기도 했다.

그동안 부친에게 전수받은 제조법을 토대로 거듭된 연구를 거쳐 마침내 현재의 신선주가 완성됐다. 이 같은 박 씨의 노력에 감동한 아들도 기능이수자를 신청했다. 건축디자인 일을 하는 아들은 주말마다 박 씨와 함께 신선주 제조를 전수받고 있다.

박 씨는 지난해부터 코리아푸드트렌드페어 발효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에 있으며 올해 26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세종대왕 초정약수축제에서 술 복원 시연을 맡게 됐다.

앞서, 지난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선주를 선물해 신선주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했다.

박 씨는 “최근 우리나라에는 잘못된 음주문화가 자리잡는 것으로 보여 마음이 아프다”며 “비싼 양주만이 고급 술이라는 편견을 깨는 전통주를 제조해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통주가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상업화를 위해 질을 낮추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술을 마시는 것만이 아닌 향과 맛을 함께 즐기는 것은 물론, 건강하게 즐기는 음주문화가 자리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신선주는 본래 함양 박씨 가문에서 400년째 내려오는 가양주로 △누룩만들기 △쌀 씻기 △고두밥 짓기 △누룩과 고두밥 섞기 △술독에 입항하기 △발효와 숙성 △술거르기 △술내리기 등 8가지 공정을 거쳐 제작된다.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이 미원면 계원리 신선봉 앞에 정자를 짓고 즐겨마셨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임용우 기자 winesk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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