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관 청주의료원장
[목요세평]

해마다 5월이면 모교에서 총동문회가 주최하는 체육대회가 열린다. 올해로 개교 93년이 되는 고등학교이다 보니 서울 뿐만아니라 전국에서 동문들이 모인다. 뙤약볕 때문에 운동장에 모이지 못하고 미리 준비한 동기별 텐트 속에서 치러진 개회식이었지만 고령의 선배들께 드려지는 존경심, 선·후배 사이에 오가는 사랑, 모교 발전을 위한 나눔 등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뜻하는 어미 모(母)자가 쓰이는 곳이 어머니를 빼면 모국과 모교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감동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우리는 올해 졸업 50주년이 되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행사를 준비했다.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 그리고 청주 등 동기들의 생활 터가 다르기 때문에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회장단의 지혜와 노력으로 모두 즐겁게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동문 거의 모두가 퇴직했기 때문에 필요한 비용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기폭제가 있었다. 루게릭이라는 어려운 병을 앓고 있는 친구의 '죽으면 낼 수 없으니 평생회비를 내겠다'는 말과 함께 보내온 평생회비에 더하여 거금의 희사 이야기가 퍼지며 예상한 것 보다 더 많은 돈이 모아져 행사를 잘 치를 수 있었다는 주최 측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다.

아직 생존해 계신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이 많지 않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타계한 동기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작년 행사에는 스승님들을 모셨으나 이번에는 모시지 않았다. 대신 오래 전 그 선생님들을 영상으로 보며 한 분 한 분 추억하며 나누는 이야기 순서는 의미가 컸다. 스승님들을 모시는 대신 회장단이 방문해 인사드리고 작은 사례를 했을 때 50년도 더 지난 그 때 일은 물론 많은 제자들의 이름까지 기억하시더라는 전언에 노랫말 그대로 '하늘같은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의 3학년 담임선생님은 멀지 않은 세종시에 살고 계신다. 제자 사랑에 건강검진은 꼭 의료원까지 오셔서 하시는 선생님께 미리 전화하여 모시기로 결정했다는 말씀을 드렸었다. 그런데 모시지 않기로 결정된 내용을 알려드리기 위해 전화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내가 전화하려고 했어' 하시며 하시는 말씀이 '안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며 '괜히 동기들의 즐거운 잔치에 짐이 될 것 같아서...'라는 전화 속의 말씀을 들으며 또 감동을 받는다. 물론 사례를 주최 측으로부터 전달 받았기에 빠른 시일 내에 찾아뵙겠다고 말씀은 드렸다.

우리들만의 자리에서 나왔던 가장 많은 이야기는 '이제 늙었으니 건강에 유의하여 오래 살자'는 것이었다. 이제 일흔이 다 되었고 그 자리에서 암으로 투병하는 몇몇 친구들에 대한 소식도 전해졌으니 그 이야기는 맞는 말이다. 사회자의 지명을 받고 마이크를 잡은 필자는 국제연합(UN)에서 재정립한 나이의 구분을 이야기하며 반전을 꾀했다. 열일곱 살까지는 미성년자, 예순다섯까지는 청년, 일흔아홉까지가 중년, 아흔아홉까지가 노년 그리고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 그러면서 이제 막 청년기를 넘은 우리가 너무 늙었다고 하지 말고 희망을 이야기 하자고 했으나 큰 공감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푸른 5월, 동문회를 통해 얻은 진한 감동 그리고 아픈 이야기, 진솔한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들을 다 터놓고 나눌 수 있었던 모교에서의 모임,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곳이 모교라서 거기에 어미 모(母)자가 들어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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