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근 대전문학관장
[화요글밭]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이 있다. 자녀 교육에 극성스러운 부모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 한때 군대 문제까지 해결해준 부모도 있었는데 이런 부모를 제설기 부모, 불도저 부모라고 한다.

최근엔 드론 부모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지속적인 감시와 끊임없는 관리로 자녀 교육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선 헬리콥터 부모와 다를 바 없다. 이와 대비되는 유형이 등대 부모다. 이 용어는 미국 소아과 의사가 만들었는데 말 그대로, 자녀가 험난한 인생의 항로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신호 불빛의 역할만 하는 부모를 말한다.

암초에 부딪치지 않도록 인도는 하되 스스로 파도 타는 법을 배워 험로를 헤쳐 나갈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믿어주고 지켜보는 것이다.

석가는 열반에 들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 아난존자를 데리고 숲길을 걷는다. 석가가 아난에게 묻는다. “아난아, 나무가 많지?" "예." 아난은 대답하고 석가는 또 묻는다. "그리고 아난아. 저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는 더 많지?" "예." 문답은 계속된다. "아난아, 내가 사십 오년 동안 너희들에게 가르친 진리의 말씀은 저 잎사귀보다도 더 많지?" "예." "그러나 아난아,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가는 제자들에게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보다도 더 많은 설법을 했다고 말하고 나서,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을까? 그 답은 역시 석가가 열반에 들기 전 제자들에게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라고 한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 등을 밝히고, 법(진리)으로 등을 밝히라는. 등(燈)은 산스크리트어로 섬(dipa)이라는 뜻도 있다.

인생을 흔히 고해의 바다라고 한다. 험난한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난파를 당하면 살기 위해 섬으로 헤엄쳐 갈 수밖에 없다. 그때 필요한 것이 수영법이다. 그리고 아무리 수영법을 잘 배웠다고 하더라도 제 스스로 헤엄쳐 나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즉, 석가는 내가 아무리 너희들에게 많은 진리를 가르쳐 주었어도 너희들 스스로 깨우쳐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석가는 또 제자들에게 비유로 묻는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을 만났다. 강을 건너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데 강가에 있는 나룻배를 발견하고 고마워하며 강을 건넜다.

그러면, 그 행인은 그 나룻배가 고맙다고 해서 나룻배를 등에 지고 가느냐 두고 가느냐? 이제 너희는 나를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하인리히 빌의 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의 제목이기도 한 이 비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수영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어도 대신 수영을 해줄 수는 없다. 삶의 생존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넘어지고 깨지면서 스스로 절묘한 기술을 터득하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 많이 넘어져 보아야 바로 서는 법을 안다. 잔잔한 바다는 절대로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 수 없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오월이다. 가정의 달인 이 오월에 어떤 가르침이 올바른 훈육이고 자신은 어떤 유형의 부모인지 자성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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