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오 청주시 서원구청장
[시론]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1991년 지방의회, 1995년에는 동시 지방선거로 부활했다. 그러나 20여 년이 넘는 성년의 나이를 맞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권한은 2할뿐인 유아(乳兒)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필자 또한 그동안의 공직경험을 통해 적극 공감한다.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해오면서 많은 민선 자치단체장을 모셔왔다. 그 분들은 임기 초부터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한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해결도 쉽지 않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산 문제, 법과 제도의 문제, 인력문제 등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그 분들의 일성(一聲)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였다. 그 분들의 자조(自嘲) 섞인 말과 좌절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8:2이다. 지방세로는 소속 공무원의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자치단체도 많다. 국비를 지원받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재정구조다.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허가 등은 법령에 발목 잡히기 일쑤고, 인력을 지원하기 위한 국(局)이나 과(課)와 같은 행정기구의 설치 또한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형편이고 보니 자치단체장들은 지역의 현안을 풀어나가고 특성에 맞도록 발전시켜 나가는 리더(leader)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을 잘 판단해 일을 많이 받아오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유능한 자치단체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웃지 못 할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과도한 권력집중과 통제는 이처럼 무기력한 지방정부를 만든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는 광역 17개 시·도, 기초 226개 시·군·구로 총 243개이다. 자치단체별로 규모도 다르고 지리적 여건이나 문화적 특성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별로 정책의 다양성이나 창조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도한 중앙정부의 권력집중과 획일적인 통제로 인한 탓이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키가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똑 같은 사이즈(size)에 같은 색깔과 무늬를 가진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분출돼왔다.

다행히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지방분권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이 뜨겁다. 지난, 역대 대통령선거는 물론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단골메뉴로 등장했으나 선거가 끝나면 어김없이 공염불(空念佛)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한결같은 믿음이다. 그것은 새 대통령의 정책의지에 기인한 신뢰이다.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청와대 비서관 인사에서 자치분권 비서관과 균형발전 비서관을 새롭게 신설했고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을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실천의지를 내 보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치재정권,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치행정권 확대를 근간으로 하는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방분권 실현에 적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지방분권은 책임있는 지방정부를 만들고 책임있는 지방정치의 역량을 키우는 토대가 될 것이다. 한꺼번에 풀 수는 없겠으나 당장 실행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 이번 정부 내에 반드시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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