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수필가
[에세이]

맹골수도의 가팔랐던 숨결이 잠시 잠잠해졌다. 잔뜩 움츠린 하늘은 긴장감이 역력하다. 뇌세포들이 팽팽해졌다. “꼭 해내야 한다.”라고 수 없이 되뇌며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 선체를 끌어올리는 일은 단지 진실을 규명하거나 미수습자들의 유해를 찾기 위함만은 아니다. 어둡고 무거운 바닷속에 침몰한 우리의 썩어문드러진 양심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악마의 발톱으로 진실을 잔뜩 움키고 있는 괴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함이다.

폐허가 돼 버린 선체를 보는 순간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해진다. 텔레비전을 보시던 어머니께서 “아이고 저걸 어쩌냐.” 나를 황급히 부르셨다. 텔레비전 화면엔 거대한 배가 옆으로 기울어 가라앉고 있었다. 바다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고 현기증이 일었다. 봄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무고한 이들을 집어삼킨 바다는 시도 때도 없이 진혼가를 불러댔다. 구슬픈 노랫소리는 세상 곳곳에 울려 퍼졌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귀를 막아버렸다. 아니 더 나아가 사고의 전모를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사회를 좀먹는 좀벌레라고 치부했고, 잘못을 더 깊이 감추려고 은폐의 탑을 쌓았다. 바다는 침묵할 수 없음을 선포했다. 그동안 자신의 이빨에 물리고 뜯기며 통곡하는 영혼들의 고통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으리라. 바다는 거대한 몸이 사납게 뒤척여질 때마다 뭉텅뭉텅 사라져가는 진실의 흔적들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홉 명을 가슴에 품고 모세의 기적이라도 이루고 싶었으리라.

돌아온 세월호에선 해맑은 아이의 웃음소리도, 한창 피어나는 청춘의 꽃들의 신명 나는 춤도, 아빠·엄마의 달콤한 체취도 느껴지지 않았다. 부정한 사회를 고발하듯 시뻘겋게 녹슬고 부서진 고철 덩어리만이 우리의 가슴을 뭉개고 찢어 놓았다. 진실의 덫에 걸린 고철 덩어리가 짐승의 눈빛으로 게워내는 것은 주인을 잃어 만신창이가 된 교복과 가방, 한 짝의 슬리퍼와 운동화, 물결에 시달려 해진 바지와 스웨터, 휴대폰, 정체를 알 수 없는 뼛조각들뿐이다. 이 유류품들은 슬픈 눈빛으로 말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느냐고. 우리가 알지 못한 그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버렸느냐고…. 저 통곡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이었는가? 노란리본을 달고 슬픈 눈빛으로 그럴듯한 위로의 말을 뱉고 떠난 한 사람의 문상객은 아니었던가. 사회의 집단적 우울을 치유하려는 노력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우울을 부추기는 무리에게 박수를 보내지는 않았는가?

오늘도 만신창이가 된 선체는 속내를 다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고압 호스로 물벼락을 맞고 톱으로 잘리면서도 여덟 명의 누운 자리를 밝히지 못하는 세월호에 비정함마저 느낀다. 언제쯤 정직한 내장을 꺼내 희생자와 이 세상과 화해하려는가. 우리는 판도라 상자 속에 갇힌 희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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