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라이프 프로젝트'

여름에 태어난 아이의 학교 성적이 나쁘다는 영국 연구진의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은 취학 기준일이 9월 1일이어서 7~8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동급생들보다 어리고 학업 수행 능력도 떨어지는 경향에서 비롯된 결과다. 취학 기준일이 1월 1일인 한국은 11~12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아동 비만과 워킹맘 사이의 연관성이 발견됐으며, 모유 수유와 아이의 인지능력 간의 인과관계도 밝혀졌다. 출생 체중이 낮을수록 중년에 근력이 약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인생행로를 추적해 분석하는, 방대한 인간 연구 프로젝트인 영국 '코호트 연구'의 결과다.

신간 '라이프 프로젝트'(와이즈베리 펴냄)는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7만여 명의 인생을 기록해온, '출생 코호트' 연구의 70년 역사를 소개한다. 저자이자 과학잡지 네이처의 수석편집자인 헬렌 피어슨은 4년 동안 과학자, 행정가, 코호트 연구원 등과 진행한 150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딱딱한 연구사를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로 풀어냈다.

코호트(cohort)는 로마 시대 수백 명의 병사로 이뤄진 보병대를 가리키던 말로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출생 코호트는 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이다.

출생 코호트 연구는 1930년대 영국의 낮은 출산율을 우려하던 런던의 인구조사위원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 첫 연구는 1946년 3월 첫주 영국 전역에서 출산한 산모의 91%인 1만3천687명을 인터뷰하면서 시작됐다. 이때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5천362명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인생의 전모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대장정을 이어왔다.

이후 1958년 1만7천415명, 1970년 1만7천287명, 1991년 1만4천62명, 2000년 1만9천519명의 신생아를 연구대상에 추가했다.

이 같은 코호트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 6천 편 이상의 논문과 40권의 학술서로 발표됐으며, 세계 각지에서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호트 연구는 1950년대까지 논란이 일던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입증했으며, 임신 중 산모의 흡연이 태아의 사망률을 높이고 저체중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흡연, 당뇨병,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비만, 운동 부족이 심장 혈관계 질환의 원인이란 것도 코호트 연구를 통해 규명됐다.

하지만 코호트 연구가 발견한 더욱 중요한 두 가지 진실이 있다. 하나는 출생 직후의 가정환경이 나머지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학업 성취도가 높고, 좋은 직업을 얻고, 날씬한 몸을 유지하며,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할 가능성이 컸다. 반면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고 책은 설명한다.

이는 1946년에 태어난 아이나 약 60년이 지난 2000년에 태어난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불평등한 출발 때문에 실패할 운명에 처한 아이들도 운명을 바꿀 길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가난한 계층의 아이도 교육열에 불타는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 속에 자라는 경우 인생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성취자 그룹에 포함됐다. 좋은 학교와 취업 기회가 많은 거주지도 도움이 됐다. 한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불우한 환경의 아이 중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는 20% 정도였다.

이영아 옮김. 392쪽. 1만8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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